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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네

"OO 말 잘 들으면 나는 오래 못 살아"

"OO 말 잘 들으면 나는 오래 못 살아"

[RevoluSong] 사이의 <엄마 말>

기사입력 2009-11-03 오전 8:31:03

 

지금까지 <프레시안>을 통해 발표된 창작곡 가운데 가장 웃기는 노래가 나왔다. 장담하건데 이 노래를 2절까지 다 듣고 나서 낄낄대고 웃지 않을 사람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물론 2절 주인공의 열렬한 지지자는 예외로 하고.

처음 사이에게 음악을 받았을 때 들었던 제목은 <엄마 말>. 시대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웬 '엄마 말'인가 했다. 게다가 흘러나오는 가사"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 엄마 오래 살아 /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 나는 오래 못 살아 / 엄마 말 잘 들으려면 / 엄마가 시키는대로 다 해야 되는데 / 나는 오래 못 살아 /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되지 /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지 /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 나는 오래 못 살아"

어린이의 솔직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가사는 모 출판사의 책에 담겨 널리 알려진 다섯 살짜리 어린이의 속내였다. 엄마말 잘 들으라고 이야기하는 부모의 입장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어린이의 마음이 어린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된 문장은 가히 무릎을 치게 할 정도로 놀라운 진실이 담겨 있다. 그런데 사이가 갑자기 왜 어린이 노래를 만들었을까 싶었던 궁금증은 채 70초가 지나기도 전에 풀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방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웃는 일뿐. 노래를 몇 번을 들어도 도무지 웃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 말>

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엄마 오래 살아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가 시키는 대로
다 해야 되는데 나는 오래 못 살아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되지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지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나는 오래 못 살아

내가 명박이 말 잘 들어야 명박이 오래 살아
그럼 명박이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명박이 말 잘 들으려면 명박이가 시키는 대로
다 해야 되는데 나는 오래 못 살아

사실 사이가 한 일이라고는 그가 발견한 어린이 글의 단어 하나만 바꾼 것뿐이다. 사실 유머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남자와 여자를 바꾸고, 부모와 어린이를 바꾸고, 슬픔과 기쁨을 바꿀 때 터져나오는 의외의 반전이 우리를 웃게 만드는 것처럼 그는 엄마를 슬쩍 대체하며 가볍고도 능청스럽게 현실을 비틀어버렸다. 사실 아이에게 말 잘 들으라고 강요하는 엄마나 국민들에게 말 잘 들어달라고 윽박지르는 지도자나 어쩌면 매한가지일지도 모르는 것을 우리는 합창으로 생략된 후렴구 속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기타퍼커션, 멜로디언으로 소박하게 꾸려진 노래는 능청스러운 사이의 보컬로 더욱 재미를 준다. 1절은 어린이들이 부르고 다니면 좋고, 2절은 어른들이 부르고 다니면 딱 좋을 이 노래를 직접 만들고 부른 사이는 홍대 앞에서 활동하다가 경남 산청을 거쳐 얼마 전 괴산에 자리를 잡은 귀농 뮤지션이다. 귀농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슈퍼 백수'라고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그는 2007년 12월 말 당시 산청의 시골집에서 순수 유기농 앨범 [아방가르드]를 만든 엄연한 정식 뮤지션이다. 그 자신이 직접 가사를 쓰고 곡을 붙였으며 녹음과 연주, 디자인, 제작, 판매까지 직접 다 해 낸 이 앨범은 사이 자신의 지향이 유쾌하게 표현된 포크송 음반이다.

ⓒ사이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간 그의 문제의식은 바로 끊임없이 자연을 수탈하고 석유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방식으로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그는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도 없는 생활을 선택하고 스스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촌의 자생적인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덜 사고 덜 쓰며 더 게으르고 더 즐겁게 살아가는 그의 생활은 "전기세 1600원"이라는 앨범의 수록곡 <아방가르드 개론 제 1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자본주의의 끊임없는 경쟁과 소비를 스스로 거부하고 느림과 즐거움의 삶을 선택해서 노래로 만들어 들려준 것이다.

어쩌면 바보같은 개미들에게 들려주는 지혜로운 베짱이의 노래라고 해도 좋을 그의 노래는 그 엄숙한 태도만큼 유쾌한 스타일로 듣는 이들을 금세 웃음짓게 만든다. 대체로 진지하고 엄숙했던 민중가요 스타일이 아니라 현재 그가 살아가는 삶처럼 밝고 여유만만한 마음이 필연적인 유머로 드러난 것이다. 시대를 담은 곡을 만들었을 때도 <엄마 말>처럼 재미있는 노래가 나온 것이 당연한 일. 이처럼 그의 노래는 부담이 없지만 웃으며 깨닫게 되는 유머의 위력이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생명과 생태, 환경, 평화를 꿈꾸는 이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자신의 노래를 들려주는 사이의 음반은 오직 그의 공연 현장에서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은 오는 11월 7일 홍대 라이브 클럽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Red Siren> 콘서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이 콘서트는 사이의 <엄마 말>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는 최초의 공연이 될 것이다. 헌법재판소마저도 우리를 쓴 웃음 짓게 만드는 요즘, 그보다는 사이의 노래를 들으며 같이 웃는 편이 건강에도 훨씬 좋지 않을런지.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2009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매주 화, 목요일 <프레시안>을 통해서 발표될 이번 릴레이 음악 발표를 통해서 독자들은 당대 뮤지션의 날카로운 비판을 최고의 음악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기사 : "다시 음악으로 희망을 쏘아 올리다") <편집자>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