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9일 화요일 날씨 바람이 불었으나 순해서 따뜻했다.
도착하니 30분 늦었다. 이미 시작해서 한참 진행 중이었다. 사업보고와 안건을 처리했다. 임원 선출이었는데 비밀 무기명 투표를 투표소까지 설치해서 했다. MBC 에서 촬영을 해갔다. 성원이 부족할까봐를 걱정하더니 회의실이 꽉 차서 앉을 자리를 두리번거리며 찾아야 했다.
두 번 정도 쉬었는데 콜텍지회에서 파는 수세미가 예쁘다. 3개를 묶어서 5000원이었다. 4개를 샀다. 분회원들에게 선물을 하나씩이라도 주고 싶어서. 그리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는 콜텍지회 사정을 이야기도 해주면서 동참보다는 공감이라도 하고 있으라고 말이다.
성학이 돌아왔다. "선생님 저 기억나세요?" 해서 쳐다보니 맞다. 살이 올랐고, 그 동안의 세월을 거스르지 못해 변해 있었다. 먼발치에서는 긴가민가 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이버 노동대학 1기였단다. 김동춘 교수의 열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갑작스레 공통분모가 생기니까 와락 친해지는 느낌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이임과 취임식이 있었다. 박모는 벼룩도 낯짝이 있다더니 그 자리에 참석을 하지 못했다. 대중집회 연설에서는 호기롭게 잘도 떠들더니, 결국 자기가 한 일에 양심의 가책은 받았는지 나오지 못했다. 운동판에서는 신용과 헌신과 실천이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높은 도덕성은 기본이다. 그 동안의 실기를 책임지울 때 몇 사람 중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 고생했다고 사무처장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보기 좋았다. 선임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라고 느껴져서 말이다. 일은 누가 망쳤지만 그래도 고생은 했다고 다독여주는 것일테니까.
문예공연이 있었다. 사물놀이, 노을팀의 공연, 노동가수의 공연, 아사 지회장의 투쟁보고, 성신여대 청소 노조의 승리투쟁을 담은 동영상 등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 했다. 학생들이 연대해서 이룬 쟁취를 끝까지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식당에서 송년의 밤이 시작된다고 해서 자리를 옮기니 떡 케익과 보쌈 조금, 어묵국물이 놓여져 있고 2기 출범을 축하하면서 건배 제의만 7번쯤 한 것 같다. 팥시루 떡인데 너무 좋아하는 거였고 시간이 8시가 넘어가서 몹시 배가 고팠다. 김이 모락모락 거리는 것을 호호 불면서 맨손으로 뜯어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니 살 것 같았다. 밥은 없었다. 술을 권하는데 거의 마시지 않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과학기술노조 지부장의 말씀이었다. 연배가 지긋해보이는데 올 11월에 동지 한 명을 가슴에 묻은 이야기를 하셨다. 연구원들이고 박사급들이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이고 사용자측에 속한다고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이들이 노동자로서 기꺼이 사회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함께 투쟁하겠다는 조용한 말씀은 감동적이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판사 노조 이야기를 했더니 놀랬던 것처럼 박사급인 연구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가는 세상이 올바르다. 노동자라는 인식이 세워졌을 때 자기의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 또한 철저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용들처럼 빌붙어 버러지처럼 살아가는 인간들도 없진 않지만.
그래서 술 한 잔 따라 올렸다. 괜히 마음이 든든해지고 한발짝 넓어진 세상처럼 느껴져서 조금씩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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