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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생각해봅시다

“엄마, 난 왜 국제중에 못가요?”

“엄마, 난 왜 국제중에 못가요?” [2008.10.17 제731호]

승인 신청한 대원·영훈중학교 등 늘어가는 국제중 앞에 초조해하는 초등학교 아이들

 

 

“국제중도 못 가는데 공부는 뭐하러 해? 안 할 거야.”

서울 강남구 ㄷ초등학교에 다니는 6학년 정명호(가명)군이 엄마한테 말했다. 10월2일 미국에서 2년 살다온 같은 반 친구가 청심국제중 특별전형 1차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군은 갑자기 ‘국제중’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정군의 담임인 강아무개 교사에 따르면, 정군은 “반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이다. 지난번 성취도 평가에서 전 과목에서 한 개만 틀렸다. 발표나 각종 활동에서도 뛰어나다. ‘1등 하는 아이’ 정군은 국제중 입학에서만큼은 친구에게 뒤졌다는 기분이 들었는지 엄마에게 “나는 왜 국제중 못 가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 국제중 대비반이 있는 서울 대치동의 한 학원. 지난 8월 서울시교육청이 국제중 2개를 서울 지역에 만든다고 발표한 뒤 아이들은 입시 요강, 전형 일정이 발표되기 전부터 국제중 대비반에 등록해 시험 대비를 하고 있다. ‘국제중 설립’은 입시전쟁 참가 연령을 10살 안팎으로 확 낮췄다.

‘1등’들을 조바심 나게 만든 학교

정군의 어머니는 “국제중은 아무래도 어학 쪽이잖아요. ‘넌 이과 갈 것이기 때문에 국제중 준비 안 한 거야’라고 말해줬는데도 아이가 국제중을 가고 싶어해서 결국 이번에 새로 생기는 대원중학교에 지원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군의 어머니는 “떨어지면 아이가 또 한 번 상처를 입거나 방황할까봐, 또 많이 준비하지 않았는데 들어가서 적응을 못할까봐 걱정된다”고 강 교사에게 상담을 의뢰했다. 결국 정군은 지난달부터 다니던 수학학원에 더해 월·수·금·토 일주일에 네 번 저녁 7시부터 밤 10시30분까지 국제중 대비학원에 다니고 있다. 정군은 “경영학자가 되고 싶다”며 “국제중에 가야 원하는 고등학교, 원하는 대학교에 더 쉽게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갈 것”이라고 말했다.

ㄷ초등학교에서는 전교생 320여 명 중 70여 명이 국제중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 강 교사는 “한 반에 평균 8~9명이 국제중 대비 학원을 다니거나 원서를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8월20일 ‘특성화중학교 지정계획’을 발표했다. 특성화중학교란 국어·국사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국제중이다. 현재 대원중학교와 영훈중학교가 승인을 신청한 상태다. 10월14일 공청회와 15일 서울시 교육위원회의 승인이 끝나면 11월부터 입학 전형을 시작해 2009년 3월 신입생을 뽑을 예정이다. 아직 어떤 절차로 뽑는지, 시험은 어떤 내용인지, 수업 방식은 어떤지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강남 지역의 ‘국제중 열풍’은 거세다.


10월8일 오후 4시40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아이들이 노란색·하얀색 학원 버스를 타고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청심국제중 1차 서류심사에 합격해 10월20일부터 2박3일 심층면접을 앞둔 이은지양은 “우리 반엔 15명이고요. 모두 1차 서류에 붙은 아이들이에요. 심층면접에서 하는 영어 토론 스킬을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300명의 서류 합격자 중 100명 안에 들어야 하기 때문에 준비할 게 많다. 이양은 “청심에 떨어지면 대원중까지 지원해볼 생각”이라고 말하며 헐레벌떡 학원으로 뛰어갔다. 대치동 ㅍ학원 안에는 ‘서울 국제중 대비반 모집’이라는 펼침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다른 학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국제중 대비반’을 늘리고 있다.

반면 경기 고양시 일산구에 있는 ㄴ초등학교는 사정이 다르다. 이곳 정인기 교사는 “국제중에 가려고 준비하는 아이는 우리 반에도 없고, 학교 전체로도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청심국제중은 물론이고, 서울에 생긴다는 다른 국제중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 교사는 “아직 입시 요강이 발표되지 않아서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이곳은 다세대 주택 등이 많은 일산에서도 비교적 가난한 지역으로 전교생의 80% 정도는 전세 혹은 월셋집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 아이들 중에서 잘하는 아이들은 과학고나 외고 등 특목고를 준비하지, 중학교 입시까지 준비하기에는 경제 형편으로나 여러모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연간 학비 1050만원, 심층면접비 25만원

청심국제중을 보면, 매달 기숙사비가 70만원, 등록금이 105만원으로 학비만 연간 1050만원이 든다. 각종 교과서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합하면 훨씬 비싸다. 입학 전형 과정의 2박3일 심층면접비만 25만원이다. 이에 대비하는 학원비도 보통 30만~50만원 선이다. 영훈중·대원중은 청심국제중보다는 교육 비용을 낮췄다. 그래도 분기별 학비가 120만원으로, 일반 중학교의 10배 수준이다.

서울 종로구 ㅎ초등학교도 마찬가지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장민화 교사는 “우리 반에는 딱 한 명이 국제중을 준비하고 있다. 전교에서도 15명 선이다. 아이들이 지원하겠다고는 하지만, 준비는 돼 있지 않은 편이고 관심 두고 있는 아이들도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장 교사는 “아이들 가정이 부유한 편은 아니다”라며 “사교육을 보면 명확하게 차이 나는 부분이 영어와 컴퓨터인데, 사실 출발선부터 달라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박진우 좋은교사모임 정책실장은 “영어는 돈으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과목이기 때문에, 국제중을 둘러싼 지역별·계급별 격차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환경을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많이 만들어주느냐가 아이의 영어 실력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며 “사실 여기에는 부모가 가지는 경제력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정인기 교사도 “결국 영어가 강조되는 국제중은 강남권 엄마들이 자신들이 투자해서 최대 효과를 얻어낼 수 있는 분야를 통해서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일 뿐”이라며 “그 단계가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한 단계 넓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중이 생기면서 아이들의 입시는 3년 더 당겨졌다. ‘고교 다양화 300 정책’으로 중학생의 ‘입시전쟁’ 참가 폭이 넓어진 데 이어 국제중의 신설로 ‘입시전쟁’ 참가 연령이 초등학생으로 낮아졌다. 영어 심층면접 등을 통해 학생을 뽑는 국제중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교 3~4학년 때부터 준비를 서두르는 학부모들 때문에 졸지에 ‘병사’가 된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크다. 김아무개(서울 ㄷ초등학교 6학년)군은 “국제중이 서울에 두 개 더 생겼잖아요. 안 그래도 부모님이 ‘너 공부 안 하면 지방대도 못 간다’고 잔소리를 하시는데, 요새는 방문만 열어놔도 공부하라고 난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은 “절대 국제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누나가 중학교 3학년인데 지금 외고 입시 준비하거든요. 근처에도 못 오게 하고 신경질을 많이 부려요. 아이들한테 안 좋은 학교 같아요.” 김군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같은 학교의 또 다른 김아무개군은 “국제중 준비한다고 6개월 동안 학교를 안 오는 애들도 2~3명 있어요. 솔직히 우리는 ‘걔 너무 나댄다’고 말해요. 뭐 혼자 잘났다고, 집에 돈이 많은 건지 혼자 학교도 안 오고. 그러다 떨어지면 어쩌려고 그러나 몰라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귀족학교’ 이미지에 너도나도 선망

강남 ㄷ초등학교의 강 교사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국제중을 둘러싸고 ‘귀족학교’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자신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무조건 국제중에 가겠다는 아이, 국제중을 준비하는 아이와 준비하지 않는 아이 간 격차, 그로 인한 박탈감 등이 눈에 보인다”며 “중학교 서열화를 둘러싸고 우려했던 문제들이 벌써부터 학교 현장 곳곳에서 느껴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종로 ㅎ초등학교의 장 교사는 “입시가 당겨지고 중학교때부터 아이들이 ‘유리천정’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과과정, 학생선발 방식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생기는 ‘특별 중학교’는 아직 개교도 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초등학생 아이들 마음 속에 경쟁과 스트레스, 박탈감을 새기고 있다.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