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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새 사장에게 일러주는 성찰- 명문입니다.

00에서 근무하는 공채 16기 라디오 피디 김00입니다. 공개적으로 글을 쓰게 되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자회사 사장으로 나가 계신 지난 몇 년 동안 KBS에는 표현의 자유가 만개하여 직원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자기의 책임 하에 널리 알리고 공유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불쾌하시더라도 달라진 세상을 이해하시고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안녕하지 못했음을 알기에 안부 인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제 가슴 속에는 KBS의 사장으로 인정하는 마음이 없으니 ‘사장님’이라는 존칭을 쓰지 않음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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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 사장에게 드리는 글

    
저는 89년에 입사하여 오늘까지 세 번의 사장 취임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했습니다. 90년 4월에는 관제사장 서기원씨의 취임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출근저지투쟁의 후미에서 선배들의 거룩한 싸움을 지켜봤고, 2003년 서동구 사장이 왔을 때는 노동조합 전임자로서 출근저지 대오의 맨 앞자리를 지켰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이 들어서 그런데 나가면 투쟁에 방해되니까 나가지 말라’는 아내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현장을 두 눈에 담고 기억에 오랫동안 넣어두고 싶은 마음에 정현관으로 나갔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낙하산 사장을 막기 위해 출입을 막았으며,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은 그들은 어떻게든 들어오려고 했고, 결국 청경들을 동원해서 사원들의 저항을 뚫고 KBS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앞선 두 시위에는 노동조합이 선두에 서 있었고, 오늘은 노동조합 전임자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사원들이 자발적으로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 또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서기원 사장이나 서동구 사장은 처음 진입을 시도할 때 적어도 자신을 막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왜 자신을 반대하는지를 묻고, 자신이 사장으로 와서 어떤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서로의 입장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자 몇 번을 돌아가고 다시 오고를 반복하면서, 그것이 헐리우드 액션이었든 아니든 사원들의 마음을 읽고 정서를 달래려는 노력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병순 사장은 단 한 번의 대화시도도 없이 군사작전을 하듯 청경들을 동원하여 시위하는 사원들을 한쪽으로 거세게 내동이치며 들어왔습니다. 취임식이 열리는 스튜디오로 통하는 모든 철문을 내려 어떤 소통도 거부한 채 철저하게 ‘닫힌’ 취임식을 가졌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살아 숨 쉬어야 할 방송사에서 사원들의 출입을 막은 채 열린 취임식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요? 제가 받은 느낌은 비겁함과 독선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의 사장 취임사는 공영방송 KBS 사장의 취임사로는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운 함량미달입니다. 방송을 정권의 홍보도구로 여기는 정권의 바보짓 덕분에 어부지리로 갑자기 사장자리가 떨어져 취임사 준비에 시간이 부족했다는 점은 알지만, 그래도 KBS에서 31년을 보낸 사람의 글로는, 그것도 취임사로는 너무도 빈곤합니다. 시장의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미디어시장 환경에서 공영방송의 사장으로서 방송의 공공성을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대신 정권과 보수신문들이 만들어낸 경영효율화의 덫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비전과 철학의 부재가 빈곤한 취임사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취임사에서 스스로 약속한 과제를 몇 가지 짚어보겠습니다.
    
방송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겠다고 하면서 ‘KBS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정성과 중립성 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공정성은 매우 추상적인 단어입니다. 경험적으로 보면 서로 경쟁하는 집단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공정하다고 하고, 불리하면 불공정하다고 주장합니다. 정치권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렇듯 공정성은 인상비평에 가깝기 때문에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이념적 지향에 따라 해석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용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근거와 기준에서 KBS 뉴스와 프로그램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공정성의 판단은 누가 내리는 것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하지 않다고 하면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까?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불공정하다고 하면 그 프로그램은 공정하지 않은 것입니까? 한나라당이 공정하지 않다고 하면 불공정한 뉴스가 되는 것입니까? 그도 저도 아니면 사장이 공정하지 않다면 편파방송이 되는 겁니까? 지금까지 KBS 프로그램과 뉴스를 둘러싼 공정성 시비는 다분히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신문들이 설정한 어젠다이며 그들의 프레임입니다. KBS 뉴스와 프로그램의 공정성에 대한 이병순 사장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평가는 일부 정치집단과 보수신문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를 놓고 경쟁하는 사회의 다원적 주체들에 의해 내려져야 합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시청자로 대변되는 국민들이겠죠. KBS가 공정하지 않은 편파방송을 하는데 어떻게 수년 동안 신뢰도와 영향력에서 다른 신문사와 방송사를 제치고 수위를 달리고 있습니까? 국민들은 공정하지도 않은 방송사에 최고의 점수를 주는 바보들입니까? 공정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이념적으로 경도되어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전 기획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게이트키핑이 이뤄지는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하시는데, 저는 이 대목에서 울화가 울컥 치밉니다. 저에게는 과거의 권위주의로 회귀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기획 단계는 자유로운 생각들이 브레인스토밍하는 단계인데, 이때부터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병순 사장은 우리 머릿속의 자유로운 생각까지 관리하는 사원들의 정신적 빅브라더입니까? 철저한 게이트키핑이라는 사장의 말 한마디가 관료주의의 폐해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KBS에서 어떻게 해석될 지 한번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제부터 팀장들은 자신의 판단으로 볼 때 조금만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기획안은 결재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고 다른 아이템으로 유도할 것이 뻔합니다. 그와 더불어 프로그램의 경쟁력도 따라서 추락하겠지요. 아시다시피 방송사는 창의력을 생명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물론 게이트키핑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유로운 생각과 아이디어가 넘쳐흘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반짝이는 기획이 나오고 프로그램의 성공으로 이어질 텐데, 사전 기획단계부터 상상력을 억압해서 어떻게 최고의 콘텐츠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자기검열에 빠져 부서장 눈치만 보는 직원들만 늘어날까 걱정입니다.
    
두 번째로 공영성 확보를 강조하셨습니다. 사실 공영성이라는 말은 잘못된 단어입니다. 공영성이란 소유 또는 운영의 공적 성격을 의미하는데, KBS는 공적 기구이며 재원 역시 공적재원인 수신료가 일정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공영적인데, 어떻게 공영성을 강화한단 말입니까? 따라서 공영방송이 나아갈 목표나 지향을 의미하고자 한다면 공영성 대신 공익성 혹은 공공성 등의 구체적인 가치를 담은 표현으로 바꿔 쓰는 게 옳습니다. 어쨌든 ‘공영성’을 지키고 시청자의 다양한 욕구와 의견을 수렴하여 공론장의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서 그 방법에 있어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도 변화하지 않은 프로그램의 존폐’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시사기획 쌈>, <시사 투나잇>, <미디어포커스> 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대내외적으로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 과연 그러한 비판은 누가 제기하고 있는지, 그 비판의 근거는 무엇인지, 비판이 낳은 효과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리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면 어떤 물의가 빚어졌는지, 그러한 물의에도 불구하고 KBS는 어떻게 수년 동안 신뢰도와 영향력 1위를 고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는 주장은 일방의 생각을 내면화하여 사원들에게 강요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보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KBS의 독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약속은 아니한만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사원들의 정당한 항의를 무력으로 짓밟고 불법적으로 사장을 제청하여 해체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이사회도 모자라, 청와대와 방통위원장, 유력한 사장 후보가 참여한 대책회의까지 온갖 부도덕한 과정을 거쳐 임명된 사장이 정치적 독립을 말할 자격이 있습니까? 낙하산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따지는 노조는 낙하산이 아니라고 했지만, 낙하산을 역사성과 성찰성으로 받아들이는 사원들은 이병순 사장을 관제사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경영효율화를 통해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일종의 슬픔을 느낍니다. 그동안 수신료 인상을 거론할 때마다 방만한 경영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보수신문과 한나라당으로부터 제기되었는데, 구체적인 수치와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막연히 직원들 급여가 많다거나 인력이 많다는 등의 정치적 수사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KBS는 국회, 방통위원회, 이사회, 감사원 등의 중층적인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직원들의 평균급여는 물론이고 집행간부의 법인카드 사용액까지 KBS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투명하게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직원이 많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KBS는 5,20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영국의 BBC와 일본의 NHK는 각각 25,000여명과 11,800여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약간의 서비스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단순 수치로만 봐도 KBS의 인력이 방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 10동안 1,000명 이상의 현원이 줄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낮방송 실시, 장애인 채널 출범, 지상파DMB방송 등 매체시간과 신규 채널이 속속 서비스를 개시했습니다. 그 많은 일을 누가 했습니까? BBC 직원들이 와서 했습니까? 모두 KBS 선후배들이 한 일입니다.
    
효율성의 잣대로 공영방송의 성과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공영방송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존재의 이유로 삼는 상업방송과 달라야 합니다. 따라서 공영방송의 경영평가는 효율성이 아니라 재원의 적절성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규모의 재원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이루어졌는가를 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비용절감이 능사가 아닙니다. 적자를 모면하여 경영능력을 인정받으려고 무리하는 순간 그동안 공들여 쌓아올렸던 KBS의 스테이션 이미지가 추락하기 시작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목욕물과 아이를 잘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방송이 뭡니까? 전문가들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선후배가 함께 협업을 통해 만들어갑니다. 탈산업사회의 경쟁력은 단순무식하게 오래 앉아서 일 많이 하는 것이 최고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생명인 기획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병순 사장에게 그러한 기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어설픈 개혁으로 조직문화를 망가뜨리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비용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망가뜨린 영국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BBC는 1990년대 초반 프로듀서 선택제를 도입하여 사내의 경쟁을 유도하고, 노동유연화를 통해 인력을 감축하고 제작비와 간접제작비를 절감하여 생산성을 제고하겠다는 정책을 펴 처음 3년 동안 인력의 19%에 해당하는 4,600명을 감원하였으며, 이익을 내지 못한 텔레비전 스튜디오와 그래픽 디자인부를 폐쇄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은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버트 사장이 사람의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구조조정의 칼날이 BBC를 휩쓸고 간 일터에 남은 것은 즐겁고 우호적인 제작 분위기가 아니라 무표정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불편한 동거였습니다. 직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제작비 삭감을 무리하게 추진한 결과 프로그램 제작이라는 방송사의 핵심역량이 위축되고, 오히려 관리비용이 증가하는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실패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대박이 터지는데, 처음부터 돈줄을 죄니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의 제작기회가 위축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청자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최근 BBC의 내부시장 제도가 경제적 필요가 아니라 방만 경영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유화정책이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습니다. 칙허장 개정을 앞두고 BBC를 민영화하려는 정부의 압력에 대한 선제공격으로 시장과 효율성을 강조하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해석입니다. BBC는 정부에 압력에 굴복하여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정규직들이 속속 쫓겨났습니다. 1990년대 10년 동안 BBC는 7,000~10,000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없앴습니다. 방송사에서 노동의 비정규직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경영효율화가 정답이 아닙니다. 사기가 떨어진 직원들은 프로그램 제작에 쏟아 부었던 헌신과 열정을 거두어 들였으며, 방관자로 떠돌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내놓지 않게 되었습니다. 언제 해고될지, 언제 비정규직으로 몰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사유화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겠습니까? 버트 사장의 뒤를 이은 다이크 사장은 이러한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하나의 BBC(One BBC)’ 정책을 모토로 내세우며 BBC를 일하고 싶은 직장, 선후배가 함께 즐겁게 일하는 직장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을 줄이고 정규직을 꾸준히 확대하는 정책을 실시하여 1990년대 중반 50%를 넘었던 비정규직의 비율이 2001년 35%까지 떨어졌습니다. 영국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수신료프로젝트팀에 있는 관계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수신료 현실화는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고리로 걸어 공영방송을 정쟁의 도구로 삼은 한나라당의 정파적 입장 때문에 무산된 것입니다. 이제 정권이 바뀌어 수신료 인상이 곧 될 것처럼 생각하신다면 큰 오산입니다. 물론 정치권이 인상의 마지막 열쇠를 쥐고 있지만,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정권에 코드를 맞춘 방송으로 수신료를 인상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수신료 거부운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시청자들의 바람이 무엇인지 살펴야 합니다. 권력의 잘못에 대해서는 당당히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KBS라야 국민들이 수신료의 가치에 동의하고 기꺼이 수신료 인상에 동의할 것입니다. 이 점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8. 8. 27  000팀 김00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