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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 퍼레이드---우리는 아직도 웃기는 나라(오찬호)

도보 퍼레이드...우리는 아직도 웃기는 나라
[칼럼] 너무나 태연하게 욕먹을 짓 하고 있는게 기가 막힐 뿐
입력 :2008-08-20 17:09:00   오찬호 칼럼니스트
사회학 강사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60~80년대 ‘강압적 국가문화’를 설명해야 할 상황이 자주 있다. 하지만 내가 삼십대이다 보니 생생한 현장묘사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고 있는 80년대의 각종 VIP 도심 환영행사를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어필이 된다. 쉽게 말해 90년대 이전은 그냥 “과거”가 아니라 기가 막히게도 “웃기는” 과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당시의 환영행사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트렌드가 달라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90년대 이후 실질 민주화에 대한 체계가 제대로 정립되면서 그에 따른 생각도 깊어졌는데 이러한 사고(思考)의 확장이 올림픽 영웅들의 축하행사를 비판적으로 보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만큼 우리의 인식이 성숙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익숙한 것을 다르게 보는 것이 가장 힘든 것이다.

사실 그들은 축하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축하하는 자 역시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는 환호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적어도 ‘당시 상황에서’는 잘못이었다.

군사정부는 언제나 ‘시선을 분산시킬’ 여러 가지 상황들을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그 역학관계의 미묘함을 이해할 수 있는 '지금의 우리들‘은 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똑똑해졌기 때문에 당시를 ‘웃긴 시대’라고 명할 수 있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축하받을 사람을 전면에 내세워 당연히 축하를 보내주어야 하는 상황을 고의적으로 만든 기획자는 아주 악랄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진실로 기뻐하고 환호하는’ 분위기를 고의적으로 세팅해 놓고 군중의 심리를 절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는 그렇게 멍청하게 그들의 지침에 진심으로 순종했다.

최근 박태환 선수의 불평으로부터 시작된 올림픽 선수단의 ‘도보 퍼레이드’에 대한 비판을 보면 우리나라가 참으로 인식의 성장을 실제로 이루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누가 선수단의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지 않겠는가? 누가 그들을 시청앞에서 직접 보고 싶지 않겠는가? 누가 마린보이 박태환의 그 자랑스러운 모습을 직접 감상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행사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다. 심리적으로 유혹되는 것을 논리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21세기 우리 국민들 정말 멋지다.

이 도보 퍼레이드 자체에는 전혀 문제점이 없다. 유럽에서는 월드컵 준우승만 하여도 도심이 마비되지 않는가. 오히려 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기만하는 쪽이 될 것이다. 축하받을 자는 당당히 받아야 하고 박수치고 싶은 자는 자연스럽게 치기를 원한다. 도보 퍼레이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우리의 올림픽 선수 귀국행사 이면에는 지지율 20%라는 바닥을 보인 이명박 정부가 있다. 물론 20%의 지지율과 행사는 별다른 상관관계가 없다. 국민들이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지지율과 별개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을 끌어 올리면서 행하고 있는 각종 무리수들을 보면 이건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촛불시위에 직격탄으로 얼핏 ‘반성’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 척 했지만 이건 반성이 아니라 “음모론 때문에 억울해 죽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음모론에 책임을 몰아 방송국을 집중공격하기 시작했다. 보수언론이 이를 또 부풀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표현에만 의존한다면 MBC PD수첩의 PD와 KBS 사장은 거의 사형감이다. 이 틈을 타서 촛불에 대한 공격은 거의 '학살 수준'에 도달했다. 초강력 특수부대를 어떻게 그렇게도 단기간에 창설하더니 시위자를 검거하면 상금을 주겠다는 초등학교 보물찾기 수준의 사탕을 주기도 했다.

그들의 상황인식은 간단하다. 촛불시위 참여자가 줄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이제 촛불의 문제가 증명된 것으로 본다. 촛불시위 반대시위가 등장하면 그것만으로도 촛불은 분명한 사탄의 무리가 된다.

즉 그들은 촛불을 분산시킬 모든 방법에 집중한다. 그리고 올림픽이 있다. 도보 퍼레이드는 올림픽에 기뻐하는 국민들의 감성을 더 유지시켜 주겠다는 그들의 교묘한 작전이다. 스포츠에 흥분할때 정치적 견해에 폭이 좁아지는 것은 인류가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실질 응용사례는 80년대 우리나라의 너도나도 프로 스포츠 탄생이 있지 않은가?

이래서 이명박 정부가 욕먹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욕 먹을 짓을 너무 태연스럽게 기획하는 것에 국민들은 기가 찰 뿐이다. 다시 말해 올림픽 영웅을 축하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 정부가 하고자 한다는 것이 엄청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영웅들은 아쉽더라도 참아야 한다.

그리고 쓴 소리 하나만 더 하자.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니 체육계에서는 이 행사자체에 정치적 의미를 너무 부여하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도보 퍼레이드는 선수들의 의욕고취 차원에서 아주 중요한 행사임을 강조한다.

▲ 오찬호 칼럼니스트 
그런데 이러한 퍼레이드 수준의 정치사회학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 그것이 “그 순간의 감성이 실제로 좋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불쌍함이 배가 될 뿐이다.

체육계 내에서도 진정한 의욕고취가 과연 어떤 것인지 실질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그렇게 고생한 선수들이 누군가의 광대가 되는 모습을 “좋은면 좋은거지”라는 수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그들을 축하할 경로는 그것 외에도 수없이 많다.

제발 순간적인 무엇에 환장하지 말자. 우리가 환장하기를 아주 바라는 누군가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소한 지금 우리나라는 그렇다. 우리나는 아직도 '웃긴나라'다. 강의할 내용들이 많아져서 나야 뭐 좋다.

오찬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