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8시에 출발을 해서 17일 7시 쯤에 도착해서 정리하고 집에 들어서니 8시가 다 되어 갔다.
샤워부터 하려다 불안해 하는 학교장에게 전화로 도착을 알렸다. 벌써 몇 번째인데 내가 전화를 하면 목소리를 못 알아들어서 핀잔을 했다. 전화번호 입력이라도 해놓으라고. 그랬더니 자기가 바보 같단다. 피식 웃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은 무지 행복했고 즐거워 했다.
자료집도 얇지, 첫날은 일정에도 없던 동막해수욕장에 갔다 왔지, 둘째날에는 그 맑은 마니산 계곡에 발을 담그고 놀았지 하니까 대부분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역시 자연 속에 아이들을 풀어놓으면 순해지고 고와지는 것 같다. 자연 치유라는 것이 어릴수록 더 빨리 되는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훌륭하게 시간을 알뜰히 사용한 점이다. 서진이가 놀라워하면서 일정에 없었는데 어떻게 시간을 맞춰서 할 수 있었느냐고 해서 막 웃었다. 여러번 왔으니까 활동을 가늠을 할 수 있었고, 온 김에 아이들에게 새로운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계곡에서는 가기 싫다며 한 시간만 더 있다가 가자고 떼를 써서 안된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미안했다. 나 역시도 좀 더 놀다 갔으면 싶었으니까. 하지만 오는 시간을 계산하면 그 햇살 속에서 아이들과 더 놀 수 없었다. 그리고 기사 아저씨에게 2시에 출발을 하겠다고 해서 온 것이니까. 기사분은 연세가 많아 보였다. 그리고 일정에도 없던 데를 자꾸 가자고 하니까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싶었나 보다. 그런데 일정을 내가 상황에 맞게 결정을 해서 그 때 그 때마다 통보를 해주니까 결국 동막해수욕장을 가겠다고 했을 때 발끈 하시는 듯 했다. 썰물이라 해수욕도 못하고 그 뻘 흙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도 않고 해서 버스 안이 더러워진다는 거다. 그러면서 안가려고 했다. 그래서 기가 막혔지만 약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갯벌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간 동막해수욕장은 저녁 5시가 넘어가는 시각이어서 그런지 아득할 만큼 물이 빠져 있었다. 널다란 뻘에 온갖 생물들이 살아 있음을 살아가려고 수선스럽게 자국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에게 모두 들어가라고 하고 싶은 것을 참고 또 참았다. 모둠별 달리기 3판, 모래 높이 쌓기와 모래 깊이 파기, 두꺼비집 만들기 놀이를 하다보니 한 시간이 금새 간 것 같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창의적으로 만들었는지 한준이가 있는 모둠에서는 악어 모양의 두꺼비집을 만들어서 감탄을 하게 했다. 달리기를 하다가 재현과 예림이 부딪혀서 무릎이 빨개져 있어서 버스에 올라서는 파스를 뿌려줬더니 다음 날은 괜찮은지 잘 걸어다녔다. 혁기는 부딪혀서 안경 알이 하나 빠져서 결국 안경 안 쓰고 다녀야 했다. 이런 자그마한 에피소드를 빼놓고 나면 아이들은 너무도 밝게 환하게 아름답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며 만끽하는 모습 자체가 행복이었다.
출발을 하고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빗발이 뿌리더니 강화에 다다라서는 아예 양동이로 쏟아붓듯이 굵어졌다. 숙소에 먼저 도착을 해서 짐을 풀었다. 12시 안되어서 도착을 해서 5명씩 한 반 배정을 8, 8, 4명으로 해서 방을 6개 쓸 수 있도록 말을 해서 그렇게 했다. 남자 아이들이 장난을 칠까봐 준우와 민수를 떼어놓았다. 1층에서 모두 짐을 정리하고 짜장밥을 먹고 출발하였다. 식단은 짜장밥- 잡채가 나오는 한식- 계란말이와 오징어 동그랑 땡이 나오는 한식- 카레라이스 였다. 아이들이 모두 김치가 맛있고, 음식이 모두 맛있다며 대부분 잘 먹었다. 식당 아주머니들도 음식물을 거의 남기지 않은 우리 아이들이 기특한지 칭찬을 하셨다. 살펴보니 지훈과 수훈이 가장 먹기 어려워 하는 아이들이었다. 여자들은 현주, 수련, 영은, 혜원이가 천친히가 아니라 아주 느리게 겨우 겨우 먹었다. 개학하면 이 아아들을 집중적으로 식사 지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했더니 언제까지냐고 해서 졸업할 때까지라고 했더니 죽었구나 싶은 표정이다. 식사 지도를 해줘야 하는 아이들이 남자 4명, 여자 4명이 되는 셈이다.
비가 와서 강화역사관으로 먼저 갔다. 아무래도 실내니까 비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이러다가 말겠지 했는데 오히려 빗발이 점점 더 굵어져서 어쩔 수 없이 우산을 가져온 아이 몇 명을 빼놓고는 모두 비옷을 사줘야 했다. 폭리를 남기느라 그랬는지 천원이면 될 것을 천 오백원이나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 줘야햇다. 그래서 아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옷을 입어본다며 얼마나 또 떠들썩하고 장황하게 부산을 떠는지 한동안 시끄러운 소음을 참고 듣고 바라봐야 했다. 기념촬영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 놀라웠다. 6년 만에 온 강화역사관은 완전히 낯선 타인이 되어 나를 반겼다. 설치 했던 많은 유물들이 사라졌고, 아이들이 직자를 해서 인쇄를 해볼 수 있는 코너도 사라지고 없었다. 고려궁터에 있었던 동종만 덩그라니 옮겨놓고 그 뒤로 철종을 모셔가는 행렬도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에이 어느 것이 임금 가마냐고 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비옷을 입고도 참고 있더니 시간이 지체될수록 더워하더니 끝내 우산을 가져와서 비옷을 입어보지 못한 아이들과 거래를 해서 교환을 하고 있었다. 역사관이 너무도 허름해서 신명이 나지 않았다. 역사관에 대해 제대로 관리하고 가꾸라고 말하고 싶었다.
곁에 있는 갑곶돈대에 올라가서 대포를 처음 본 아이들은 그냥 신기해 했다. 돈대의 특징을 좀 살펴보라고 하면서 일러줬지만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고 궁금증을 더하게 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갑곶돈대를 다 돌아보고 내려오니 비는 실비로 내리다가 결국 내리지 않아서 비옷이 아깝게 되었다. 아이들 중 태경과 예인은 아주 간단하게 다시 접어서 정리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그저 다 풀어헤친 그대로 둘둘 말거나 뭉뚱그려서 부피를 아주 크게 해놓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 다음 코스는 고려궁지를 갔다. 역사관에서 일괄 구매를 하면 싸다고 해서 역사관,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을 묶은 세트를 구입하니 한 장에 1300원이라고 해서 참 다행이었다. 비옷 값도 걱정이고, 자료집, 책정 외의 주차비도 걱정이었으니까.
고려궁지에서 아이들을 둘러보게 했다. 그런데 고려궁지 바로 아래에 성당을 새롭게 지어놓고 박물관처럼 꾸며놓고, 공원과 호수까지 마련된 너른 주차장까지 완비되어 있었다. 3.1운동 거사 기념탑부터 시작해서 그 아래는 무슨 문화원이었다. 성당으로 들어가서 둘러보면서 아무래도 외규장각이 나오지 않아서 빗장으로 닫혀진 대문을 열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마찬가지였다. 그 덕에 철종을 왕으로 모셔갔던 가마를 놓아두었던 터라는 비석을 볼 수 잇는 횡재를 했다. 기사 아저씨도 지리에 어두우신 듯 했다. 버스에 길도우미를 달았음에도 소용 없었다. 결국 물어 물어서 가야했다.
아이들은 고려궁지의 빈 터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너무도 썰렁한 외규장각과 유수동헌과 모조품인 동종을 둘러보다가 기념촬영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이 곳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기 위해 여 설명을 여러번 되풀이 해서 해줘야했다. 아이들은 동종 비각 앞에서 고려궁터에 얽힌 역사적 사실을 옛이야기처럼 듣더니 그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 모두 발표를 시키려고 했다가 열명 정도 발표를 시키고는 병인양요과 신미양요의 폐혜에 대해 다시 설명을 해주면서 아이들 모습을 스냅처리를 한 셈이다. 오늘에서야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힘이 있구나 싶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뚜렷하고 자기 형편이 그렇게 할 수 있을 적에는 가정일로만 몰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교사의 설명과 상황 연출이 얼마나 답사 장소에 필요한지 거듭해서 알 수 있었다.
다음은 고인돌을 보러 갔다. 여기서도 길을 몰라 빙둘러 가야 했다. 기사 아저씨가 엉터리 네비게이션을 달고 다니시지는 않을텐데 두번째나 길을 잃게 했다. 옛날에 고인돌 세계 축제 때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가 본 경험이 있어서 새로웠다. 둘러 보고 움집에 들어가 보라고 했더니 30명 정도는 족히 들어갈 규모였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들떠 있었다. 소윤이가 아예 카메라를 맡기면서 내가 사진을 자주 찍었다고 하니까 웃었다. 푸른 풀밭과 시커먼 고인돌과 밤으로 가려는 하늘의 붉으레한 빛깔은 참으로 편안하게 해줬다.
------------------일단 여기까지. 너무 피곤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를 궁리했다. 한 학기동안 동학년들이 특수목적고 같다고 놀림을 받을 정도로 자발적인 부서활동과 모둠활동을 해내었다. 짜투리 시간이 한시간 반 정도가 있었다. 아이들에게 샌들을 신거나 아니면 맨발로 버스를 타라고 했다. 동막 해수욕장을 가기 위해서였다. 숙소 사장님이나 기사분이 모두 정말 대책없는 선생이구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뻘 흙이 묻으면 안 지워진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강행을 했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이들 얼굴이 그렇게 티없이 고울 수가 없었다. 저런 아이들의 모습을 교실에서는 본 적이 없다. 늘 삐죽해 있는 민수조차도 희희낙낙이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 뒤로는 일기쓰기, 자료집 정리, 단군신화라는 주제로 대본을 써서 즉흥극을 공연하는 일로 아이들은 분주했다. 그 틈을 타서 노는 아이들은 또 놀고 연습도 안해서 거듭해서 재공연을 연거푸 했어야 했다. 결국 아이들 눈총과 미안함이 범벅이 되면서 6개 모둠의 단군신화 공연이 끝났다. 시간은 11시가 가까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연극 통과를 하면 물, 쥬스, 과자 2개를 간식으로 주었다. 그런데 끝모둠이 챙기려고 했더니 물이 10병이나 모자랐다. 누군가 어느 모둠에서 2병씩 챙긴 것이다. 징징거리는 모둠아이 말을 듣고 노발대발해서 아이들을 소집시켜서 스스로 일어나라고 했더니 가관이다. 껌을 그냥 버려서 바닥에 늘어붙게 하지 않나, 과자를 먹다가 맛없다고 그냥 버리고, 쥬스도 마찬가지여서 먹다가 그냥 버려서 분리수거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 나한테 배운거냐니까 아니란다. 소리 소리 지르면서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먹지 못하니까 이 지경인 것 아니냐고 난리를 떨었다. 그제야 아이들은 스스로 일어나서 야단을 덜 맞을 거라고 계산했던 것이 부끄러운지 고개들이 점점 숙여졌다. 물론 그 중에는 내가 야단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내리깔고 있는 것일테지만. 일장연설을 하고 말았다. 현아,서진, 준우가 고생을 하면서 분리수거를 했고, 마무리를 지었다. 피곤해서 쉽게 잠들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소곤거리며 나름대로 꼼틀대고 있었다. 선생님 기세를 보니 오늘 장난치고 놀았다가는 안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모두들 드나드는 아이 하나없이 조용했다. 방문을 열어놓고 아이들이 낸 일기장, 자료집을 중간 점검했다. 그러고 있는데 현아가 체했다며 서진이랑 왔다. 물약을 먹이고 장지 끝을 50번 정도 눌러줬더니 아프다고 야단이다. 그 덕인지 다음날 아침 물어보니 아무렇지도 않다고 아침 식사를 다 했다. 다행이다.
아이들은 12시 반까지는 거의 자지 않고 있었다. 1시 반 정도 되니 좀 자는 듯 했는데 여전 이야기 소리가 들렸다. 2시 반이 되니까 몇 명 빼놓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신발을 가지런히 하지 않는다고 야단 맞고, 즐거운 기분을 갖기는 영 아니라고 생각을 했나보다. 커피를 거푸 마신 탓에 잠이 오지 않았다. 뉴스 채널을 돌려가며 보다가 결국 누웠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한번 더 점검을 한 뒤에 잠이 들려고 하는데 모기 한마리가 여기 저기를 물어서 결국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 방에 모기가 없을까 걱정이 되었다.
한잠을 자고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었다. 늦잠을 자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피곤한 상태여서 긴장을 했어도 늦을까봐 걱정을 했더니 겨우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누워 빈둥거리면서 날이 밝기만 기다리다가 잠이 설핏 들려고 했는데 아이들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일어나서 이부자리 개고, 머리 빗고 뉴스를 보면서 기다렸다. 실은 어젯밤에 노트북이 있었더라면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청 지역이었고, 인터넷이 되는 사무실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도 맛있다며 아이들은 먹는데 나는 입이 깔깔했다. 간신히 먹고 둘째날 일정을 시작했다. 삼랑성- 광성보- 덕진진-초지진을 갔다 온 뒤에 점심 먹고 마니산 계곡으로 가는 것으로 정리를 해서 전달을 했다.
삼랑성에서 얽힌 전설을 이야기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모두 귀가 쫑긋이고 너무도 감명깊게 들어서 더 재미있게 해줄껄 싶었다. 덕하가 있었으면 더 실감나게 말해줄텐데 싶었다. 가파른 경사길은 변함없이 숨을 몰아쉬게 했다. 양헌수 대장의 승리를 알리는 비각이 설치 되었고 우거진 숲길을 따라 가보니 운장대가 새로 설치되어 있고 두마리 두루미가 마주보고 있는 찻집을 지나 대조루를 지나가면 불쑥 대웅전 앞마당이다. 가람배치가 독특하다. 더구나 대웅전 네 귀퉁이에 매달려 지붕을 떠받들고 살아야 하는 기구함에 대해서도 알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버스에 올라와서 이야기를 해주니 아이들이 재미있어 했다. 수국이 눈이 부셨다. 소윤이와 여럿 아이들 사진을 스냅처럼 찍어주었다. 걸어나오면서 유지민이 울고 또 혁기가 결부되어 있어서 정말 화가 났다. 싸우지 말라고 한 말이 우습게 느껴지는지 강화 와서만 세번째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특유의 핏대 세우기와 윽박지르는 말투로 상대방 잘못만을 이야기 햇다. 그래서 네 잘못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눈을 흡떠서는 째려보고 있었다. 뭐하고 있느냐고 야단을 치면서 법석을 떨고 나서야 다음을 진행할 수 있었다. 내려가는 길 내내 마음이 언짢았다. 지민이는 계속 옆에서 아양떠는 말을 하여서 더 미운 생각이 들었다. 좀 참거나 배려해주면 될 일을 가지고 꼭 그런다. 힘 약한 아이들을 늘 힘으로 누르려고 하는데 그것도 힘센 아이를 기대서 하는 짓이 여간 고약한 것이 아니다. 야단을 더 할까 하다가 참았다.
. 다음은 광성보로 향했다. 광성보 전투를 이야기 해주면서 광성돈대에서는 가상 모의 병인양요를 체험하도록 상황 설정을 하고 가상 전투를 했다. 아이들은 선생이 오버한다고 낄낄거리면서도 화살을 쏘라고 하면 화살을 대포를 쏘라고 하면 대포를 쏘는 시늉을 하면서 한참을 실현해보였다. 나뭇가지가 울창해서 그늘이 진 곳이 많아서 그렇게 하기에는 제격이었다. 아이들도 깔깔대면서 그 날의 항쟁을 되새겨 본 것이 재미있었단다.
그 다음은 손돌목 돈대와 용두 돈대에 갔다. 가다가 두꺼비를 보느라 아이들이 돈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리고 용두 돈대에서 개인프로필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흐리게 나와서 좀 그랬다. 용두 돈대에서도 손돌목의 회오리와 암초 때문에 쉽게 배가 상륙하지 못하는 자연지형을 이용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신기해 하며 가상 전투 그림을 열심히 그려보도록 독려를 했다.
덕진진은 아름답다. 안해루도 그렇고 바로 연결된 뻘이 더 고왔다. 아이들에게 그제야 진과 보와 돈대의 차이점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을 각각 이야기 하라고 하니까 제법 이야기 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보충 설명을 해주고 남장돈대까지는 가지 않고 초지진으로 갔다. 총알 흔적의 소나무와 대포를 맞은 담장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그날들의 치열한 싸움의 현장을 설명을 해줬다. 초지진 안보다는 갯뻘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십여분 관찰하고 쉬게 했다. 아이들은 게를 잡고, 갈대 사이도 들어가보면서 주어진 환경 속에서 놀이를 진행하였다.
서둘러 숙소에 와서 점심을 카레라이스로 먹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코스인 마니산에 갔다. 맨발로 지압길을 걷게 하고 얕으막한 냇가에서 발을 담그게 했다. 아이들이 너무도 즐겁게 놀아서 사진에 담느나 바빴다. 한 시간만 더 놀자는 아이들을 달래서 오후 2시에 출발을 해서 두 군데 휴게소에 들렀다가 도착한 시간은 7시가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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