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이 배워야 할 '빨갱이 교육론'
[프레시안 books]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
기사입력 2011-01-14 오후 5:48:21
묵직한 부담.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수호믈린스키 지음, 수호믈린스키 교육사상연구회 옮김, 고인돌 펴냄)이 내게 던져졌을 때 같이 따라온 느낌이었다.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만치 않은 분량 탓이었다. 이 모든 제안을 다 곱씹을 수 있을까?
그러나 차례를 전부 다 넘기기도 전에 이 책이 내게로 왔어야 할 책임을 알았다. 이렇게 문장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이고, 낙서를 해가며 책을 읽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단정적으로 말하자.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대안을 꿈꾸는 교사라면, 아니 교사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2011년 대한민국 교육 현장의 풍경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학 교수 박노자는 이 책의 추천사에서 그것을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표현했다. 세계 수학 경시 대회가 열릴 때마다 구미 출신들을 기죽이는 것이 한국 학생이지만, 정작 그들에겐 독립적, 비판적 사고 능력이 없다. 학습되는 지식의 양은 많아도 그것을 왜 학습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 의식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 제도를 조금씩 바꾸거나 사교육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상황의 반전을 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학교의 위기는 세 '근원'에서 유래해 복잡하고 역동적인 다층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근원은 개인주의에 근거한 학부모와 학생의 욕망, 탐욕적인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그리고 교육 철학의 부재다. 신분 상승을 위해 내달리는 개인들은 정부의 '줄 세우기' 교육 정책에 합류한다. 거기에 교육 활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철학은 없다.
수호믈린스키의 교육론은 이러한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온다. 휴머니즘 원칙, 아동 인격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원칙에 바탕을 둔 그만의 독창적 교육 체계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에서 '추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비판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는 공산주의 교육에 대해, 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인격들'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은 그의 전인 교육론의 총체다.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반세기를 건너 온 그의 통찰은 어두운 우리 교육 현실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선생님들이라면, 이 100가지 제안을 하나씩 꼭 거쳐 보자.
수호믈린스키는 교수법 전문가들이나 교육학 이론가들이 학교 미래의 성패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각 학과목들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와 연계시키는 것"이라는 데에 놀란다. 그러면서 '오멜코 할아버지'의 일화를 예로 들어 이러한 흐름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나는 대대로 전해온 우리의 고향 사람이며 불우한 농사꾼인 오멜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오멜코 할아버지께는 땅이 한 마지기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알뜰하게 골라낸 봄밀 종자를 그 땅에 심으려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할머니 마리아와 함께 겨울 내내 페치카 곁에 앉아서 맨손으로 종자를 한 알씩 정성들여 골랐다.
그러나 파종할 때가 되었을 때, 오멜코 할아버지는 종자만 생각하다가 그만 밭갈이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파종하러 가기는 하였지만 밭을 갈지 않고 종자를 뿌렸던 것이다."
이 일화는 '밭갈이'가 없는 우리 교육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교육 철학의 근간에는 밭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공교육 과정 12년 동안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교수법을 뛰어 넘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학생이 교육자를 능가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교육자"라고 말한다. 이 책의 대부분의 조언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크게 보면 학생과의 관계와 교원의 자기 계발로 나뉜다.
그의 조언은 숙제 검사와 학습장 검사와 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문화적 기억력, 의도적 주의력 등 비고츠키의 교육 이론에 나오는 고등 정신 기능까지 아우른다. 또 저학년 아이들과 고학년 아이들에게 사용할 낱말에 대해서도 각각의 전략을 달리 해 제시하고 있다.
1학년 산수에서 사고력을 훈련하는 방법, 학습 속도가 더딘 학생과 빠른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법까지 자신의 깨달음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 교원 자신의 계발에 해당하는 계획서 작성, 교육 일기 쓰기, 수업 지도안 작성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조언한다.
나아가 수호믈린스키는 자신의 교장 경험을 반성하며, "교장은 무엇보다도 학교 교육 과정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세세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또 국가의 교육 과정을 구성하는 데 참고할 내용도 담겨있다. 이 책을 선생님들뿐 아니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담당자들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좋은' 예로 제시돼 온 교육 이론, 사례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얻을 수 있다. 가령 한국에서 종종 제시되는 핀란드의 교육에는 어두운 면이 없을까? 정서적 측면의 교육이 인지적 측면의 교육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깊은 통찰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핀란드 교육 혁명>(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지음, 살림터 펴냄)에서 성열관과 송순재가 말했던 핀란드 교육의 어두운 면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과주의 정책에 휘말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반의 시험 평균 점수를 높이는 데, 'OO대'에 몇 명을 보내는지에 집착하는 작금의 교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에게 묵직하지만 즐거운 부담인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을 권한다.
누군가는 이 책과 현재 우리의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변화든 읽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을 수 있었던 "교사가 먼저 줄서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전남대학교 교수 김상봉의 주장이 약간의 희망을 갖게 한다.
"교사는 정치 체제를 떠나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평가에 구애받지 말고 교육자의 능력을 기르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수호믈란스키의 말은 시대를 떠나, 사회 체제를 떠나 어디에서나 큰 울림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차례를 전부 다 넘기기도 전에 이 책이 내게로 왔어야 할 책임을 알았다. 이렇게 문장을 색색으로 물들이고,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이고, 낙서를 해가며 책을 읽었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더라? 단정적으로 말하자. 한국 교육의 근본적인 대안을 꿈꾸는 교사라면, 아니 교사라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수호믈린스키 지음, 수호믈린스키 교육사상위원회 편역, 고인돌 펴냄). ⓒ고인돌 |
그런데 시험 제도를 조금씩 바꾸거나 사교육을 금지시키는 것으로 상황의 반전을 꾀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 학교의 위기는 세 '근원'에서 유래해 복잡하고 역동적인 다층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근원은 개인주의에 근거한 학부모와 학생의 욕망, 탐욕적인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 그리고 교육 철학의 부재다. 신분 상승을 위해 내달리는 개인들은 정부의 '줄 세우기' 교육 정책에 합류한다. 거기에 교육 활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줄 철학은 없다.
수호믈린스키의 교육론은 이러한 경쟁 위주의 교육 현장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온다. 휴머니즘 원칙, 아동 인격의 높은 가치를 인정하는 원칙에 바탕을 둔 그만의 독창적 교육 체계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에서 '추상적 휴머니즘'이라는 비판을 들었을 정도였다. 그는 공산주의 교육에 대해, 당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고하는 인격들'을 형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은 그의 전인 교육론의 총체다. 시대 상황은 다르지만, 반세기를 건너 온 그의 통찰은 어두운 우리 교육 현실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난다.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선생님들이라면, 이 100가지 제안을 하나씩 꼭 거쳐 보자.
수호믈린스키는 교수법 전문가들이나 교육학 이론가들이 학교 미래의 성패와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교과서가 어떻게 만들어지며 각 학과목들을 어떻게 가르치는가와 연계시키는 것"이라는 데에 놀란다. 그러면서 '오멜코 할아버지'의 일화를 예로 들어 이러한 흐름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나는 대대로 전해온 우리의 고향 사람이며 불우한 농사꾼인 오멜코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오멜코 할아버지께는 땅이 한 마지기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알뜰하게 골라낸 봄밀 종자를 그 땅에 심으려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할머니 마리아와 함께 겨울 내내 페치카 곁에 앉아서 맨손으로 종자를 한 알씩 정성들여 골랐다.
그러나 파종할 때가 되었을 때, 오멜코 할아버지는 종자만 생각하다가 그만 밭갈이 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하여 파종하러 가기는 하였지만 밭을 갈지 않고 종자를 뿌렸던 것이다."
이 일화는 '밭갈이'가 없는 우리 교육계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도 읽힌다. 교육 철학의 근간에는 밭갈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은 공교육 과정 12년 동안 학생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한 교수법을 뛰어 넘는 무엇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저자는 "학생이 교육자를 능가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교육자"라고 말한다. 이 책의 대부분의 조언은 바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 크게 보면 학생과의 관계와 교원의 자기 계발로 나뉜다.
그의 조언은 숙제 검사와 학습장 검사와 같은 소소한 것에서부터 문화적 기억력, 의도적 주의력 등 비고츠키의 교육 이론에 나오는 고등 정신 기능까지 아우른다. 또 저학년 아이들과 고학년 아이들에게 사용할 낱말에 대해서도 각각의 전략을 달리 해 제시하고 있다.
1학년 산수에서 사고력을 훈련하는 방법, 학습 속도가 더딘 학생과 빠른 학생을 지도하는 방법,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법까지 자신의 깨달음을 자세히 들려준다. 또 교원 자신의 계발에 해당하는 계획서 작성, 교육 일기 쓰기, 수업 지도안 작성에 대해서도 성실하게 조언한다.
나아가 수호믈린스키는 자신의 교장 경험을 반성하며, "교장은 무엇보다도 학교 교육 과정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세세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또 국가의 교육 과정을 구성하는 데 참고할 내용도 담겨있다. 이 책을 선생님들뿐 아니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담당자들도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좋은' 예로 제시돼 온 교육 이론, 사례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얻을 수 있다. 가령 한국에서 종종 제시되는 핀란드의 교육에는 어두운 면이 없을까? 정서적 측면의 교육이 인지적 측면의 교육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깊은 통찰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핀란드 교육 혁명>(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지음, 살림터 펴냄)에서 성열관과 송순재가 말했던 핀란드 교육의 어두운 면이 무엇이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가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과주의 정책에 휘말려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반의 시험 평균 점수를 높이는 데, 'OO대'에 몇 명을 보내는지에 집착하는 작금의 교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들에게 묵직하지만 즐거운 부담인 <선생님들에게 드리는 100가지 제안>을 권한다.
누군가는 이 책과 현재 우리의 현실 간의 괴리가 크다고 고개를 저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변화든 읽고 생각하는 것으로부터 조금씩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을 수 있었던 "교사가 먼저 줄서기를 그만둬야 한다"는 전남대학교 교수 김상봉의 주장이 약간의 희망을 갖게 한다.
"교사는 정치 체제를 떠나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자이어야 한다"는, "평가에 구애받지 말고 교육자의 능력을 기르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수호믈란스키의 말은 시대를 떠나, 사회 체제를 떠나 어디에서나 큰 울림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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