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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왼쪽)가 13일'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이 용산 하이원빌리지에서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연 월례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가운데는 사회자 문정인 연세대 교수, 오른쪽은 김동현 고려대 객원교수(전 미 국무부 선임통역관) |
ⓒ 황방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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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국제정치학)는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천안함 사건 의장성명에 대해 "한국외교의 총체적 실패"라고 규정했다. 서 교수는 이날 오후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이 용산 하이원빌리지에서 '오바마의 한반도 정책, 어디로 가고 있나'라는 주제로 연 월례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와 "한국 정부는 유엔에서 실질적인 대북조치를 끌어내는데 실패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총체적 실패'로 규정한 근거는 4가지다.
- 한국 정부가 북한을 공격주체로 명시하려 한 것은 북한에 대한 경제, 군사 등 실질적인 제재조치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보리는 제재가 아닌 평화와 대화협상을 제시했다.
- 천안함 조사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배제했는데, 이를 만회하고 대북제재 공조를 꾀하려다 러시아의 자체조사를 인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한 국가에게 민군합조단의 조사결과를 부정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통째로 준 것이다. 러시아는 공식발표없이 언론에 흘리는 것만으로 충분한 효과를 보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꽃놀이패를 쥔 셈이고, 한국에게는 원죄가 될 것이다.
- 성급하게 외교활동을 벌인 결과 중국과의 관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중국은 조지워싱턴호의 서해진입 문제에 대해 강력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도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에 왔지만 중국은 이러지 않았다. 천안함을 둘러싼 난기류가 드러난 것이다.
- 오바마 정부는 한국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북한에 강경한 것처럼 비치지만, 천안함 정국 와중에도 비핵화에 대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정부 발표를 지지하면서도 독자적으로 북한을 비난하거나 행동에 나서는 데는 방점을 두지 않고 있다. 미국은 후텐마 기지문제를 해결했고, 동북아공동체를 주장하던 하토야먀 퇴진까지 챙겼다. 한국 정부에 대한 강력한 지지는 한미동맹을 전략동맹으로 전환하려는 오바마에게 강력한 추진력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워싱턴에 진짜 한반도 전문가들 없다... 한국정부 자금에 의존"
"중국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완전히 포섭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중국이 매우 적극적인 상황에서 오마마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무엇으로 보느냐"는 문정인 연세대 교수의 질문에도 서 교수는 4가지로 답했다.
- 지난해 4월에 북한이 장거리로켓을 발사하자 오바마 정부는 이를 미사일로 규정했는데, 이 사건이 이후 북미관계에서 중요하게 작용했다. 오바마 정부가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고 북한이 핵실험으로 대응하면서, 오바마 정부 내의 대북협상파 입지가 와해됐다.
- 오바마 행정부 내에 대북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북전문가나 핵협상 맡는 사람들 손에서 떠났다. 그러면서 비확산전문가들 입장에서의 접근이 강화됐고, 이들 중 일부가 중국 전문가라라는 점에서,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는 환상이 유포됐다.
- 워싱턴에 자칭 한반도 전문가들이 있는데, 사실 진짜 전문가는 없다. 이들은 냉전시각이 강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정부의 자금에 의존하는데, 이렇게 해서 워싱턴의 반북여론이 강화된 것이다.
- 이명박 정부라는 요인도 크다. 한국의 영향력이 커졌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지금의 조합은 최악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북 협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고, 오바마 정부는 동맹의 말을 적극 반영한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서 교수는 특히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에 '올인'해 남북관계가 파탄으로 치닫고 외교역량이 이에 소진되는 동안 오바마 행정부는 냉정히 상황을 관리하며 국가이익을 추구하고 있다"며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미국의 국가이익인지는 미국도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강경책이 많은 한국민에게 오바마 정부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신뢰의 동요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6.2지방선거 민심, 간접적이지만 미국에 대한 경고"
그는 "미국이 추구하는 동맹강화가 단기적으로는 미 국가전략에 충실한 것이겠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미국과 아시아의 안보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한국민의 민심은 간접적이나마 미국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서 교수는 "오바마 정부에게 희망이 존재한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비확산이 중요한 정책 목표로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년 6개월 동안 이명박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결과가 북한의 2차 핵실험과 핵능력 강화라는 점에서 오바마 정부가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천안함사건 이전과 이후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발언이 복사판"이라며 "미국은 천안함 이전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 발생 이전인 지난 3월 20일 고든 두기드 미 국무부 대변인은 6자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그동안 복귀할 기회가 있었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했었다. 안보리 의장 성명 발표직후 북한이 6자회담 재개를 강조하고 나서자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3일 "북한이 먼저 취해야 할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행동들이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이 출발점의 동일성을 확인한 것으로, 북미관계는 여기서 출발할 것"이라며 "중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석 전 장관과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비핵화목표를 포기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이 전 장관은 "북한이 지난해 핵실험하고 1년 2개월이 지났는데 미국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중국이 적극 나서면서 1874호 대북제안도 무력화됐다"면서 "그렇게 완고했던 부시정부 때였어도 6자회담을 끌어냈을 것인데 비해, 이명박 정부가 아무리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실망감을 나타냈다.
백학순 수석연구위원도 "천안함 사태 이후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무너지는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에 대해서 군사안보카드를 썼고,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도 명백하게 포기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비핵화를 위한 정책적 수단에 대한 비판과 비핵화라는 목적에 대한 분석은 분리해야 한다"면서 "북한과의 협상이라는 정책적 수단은 성과가 없었으며 결국 정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평가가 겹쳐지면서 오바마 정부가 압박재개를 채택한 것이지만 비핵화라는 목표를 포기한 것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핵무기소형화 기술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북한 핵융합성공 발표 주목"
이날 토론회에서는 북한의 핵능력에 대해서도 거론됐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의 "미국은 북한의 핵능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서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의 소형화라는 문제에 걸려있기 때문에 미국은 당장의 위협은 아니라고 보고 있는 것 같다"면서, 그러나 "핵무기 소형화 기술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북한이 핵융합반응에 성공했다고 밝힌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탄두 소형화, 즉 크기는 작지만 거대한 폭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폭발 초기단계에 중성자가 많이 나오게 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 핵융합기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안보리 의장성명 이후의 출구전략에 대해서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정부가 5.24조치 내놓은 지 두 달도 안 돼 당국간에 출구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인도적 지원쪽에서 물꼬를 터야 한다"면서 "영·유아 취약계층지원이 아니라 쌀지원 추진을 통해 출구를 찾아야 할 것이고, 이렇게 방향을 잡아야 미국도 편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천안함 흡착물질'의 진위여부에 대해 이승헌 버지니아대 물리학과 교수와 함께 문제를 제기해오기도 한 서 교수는 "미국과 일본 등 해외에서는 국내에 비해 전혀 여론화가 돼 있지 않다"면서 "유엔안보리에 (흡착물질 논란에 대한) 의견서를 보낸 데 이어, 미 대사관과 국무성에도 보냈고, 국무성과 국방부에서 연락이 와서 의견교환을 했다"고 밝혔다.
또 천안함 침몰원인 규명을 위한 합동조사단에서 미국이 한 역할과 관련해서는 "미국 정부관료는 한국 정부의 조사에 참여해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면서 "제가 해석하기로는 원자료, 천안함 함체, 흡착물질 등을 미국이나 해외조사단들이 직접 분석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분석한 것을 보고받고 평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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