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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
[단독]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금강산길 막아놓고 웬 <금강산>?"
10.05.17 20:31 ㅣ최종 업데이트 10.05.17 20:31
  
5.18 30주년 기념식엔 대통령도 불참하고, 대통령 기념사는 총리 기념사로 격하됐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공식행사 내용에서 빠지고 <방아타령>이 연주된다. 사진은 기념식 리허설이 열리고 있는 17일 오후 5.18국립묘지 전경.
ⓒ 이주빈
5.18묘지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식전 배경음악으로, 총리 퇴장할 땐 <방아타령>

 

5.18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장에 <방아타령>이 울려 퍼진다. 오월영령들을 추모하고 오월정신 계승을 다짐하는 기념식장에 경건한 추모곡 대신 잔칫집에나 어울리는 경기민요가 연주되는 것이다.

 

30년 동안 5.18 추모곡으로 불려왔고, 지난 2004년부터는 정부의 공식 5.18기념식에서 제창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30주년 기념식에서는 함께 부를 수 없게 됐다. 국가보훈처가 5.18 기념식 공식행사 내용 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18유가족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 순서를 아예 없애버렸기 때문.

 

공식행사에서 제외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마른 잎 다시 살아나>와 함께 식전 배경음악으로 연주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라진 5.18기념식장에선 <방아타령>과 <금강산>이 연주된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하는 <금강산>은 이명박 대통령 대신 기념식에 참석하는 정운찬 총리가 입장할 때 연주된다. 대표적인 경기민요인 <방아타령>은 5.18기념식이 끝나고 정 총리가 퇴장할 때 연주된다.

 

이 같은 사실은 <오마이뉴스>가 17일 오후 광주 5.18국립묘지에서 단독 확인했다. 5.18기념식에서 연주할 한 심포니오케스트라의 '5.18기념식 연주순서' 곡 리스트엔 <방아타령>과 <금강산>이 기재돼 있고, 실제로 이 리스트에 맞춰 17일 오후 리허설을 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 역시 17일 오후 6시 10분경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총리가 입장할 땐 <금강산>, 퇴장할 땐 <방아타령>이 연주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앞서 오후 5시경에는 "어떤 곡으로 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문제는 <방아타령>이 5.18기념식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기민요라는 것이다. <방아타령>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노자 좋구나 오초동남 너른 물에 오고가는 상고선은

순풍에 돛을 달고 북을 두리둥실 울리면서 어기여차 닻감는 소리

원포귀범이 에헤라이 아니란 말인가

에헤에헤~ 에헤야~ 어라 우겨라 방아로구나

반 넘어 늙었으니 다시 젊기는 꽃잎이 앵도라졌다..."

 

  
5.18 30주년 기념식에서 연주될 곡목의 리스트. 총리가 입장하고 퇴장할 때 각각 <금강산>과 <방아타령>을 연주할 예정이다. 리허설을 하고 있는 한 단원의 악보판에 '5.18 기념식 연주순서'라는 제목의 메모 종이가 꽂혀 있다.
ⓒ 이주빈
5.18기념식

 

"금강산 관광길 막은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찾아가자' 연주를?"

 

양희승 5.18구속부상자회 회장은 "다른 때도 아닌 5.18 30주년에 대통령이 불참하는 것도 모자라 유가족들이 해왔던 경과보고도 못하게 하더니, 경건해야 할 5.18기념식장에서 <방아타령>을 연주하며 이젠 아예 대놓고 잔치마당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며 "대체 어디서 오월정신을 찾으란 말인지 기가 막힌다"고 분노했다.

 

양 회장은 "저들이 <방아타령>을 연주하건 말건 우리는 영령들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것"이라며 "결국 5.18 30주년 기념식은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확인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고 허탈해했다.

 

전통문화에 조예가 깊은 이아무개(44)씨는 "흔히 방아 혹은 방아 찧는 소리는 음양에 비교돼 '과수댁이 지나갈 때는 방아도 못 찍게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그래서 <방아타령> 같은 곡은 잔칫집에서 연주하거나 하지 영령을 추모하는 자리에선 불경스럽다며 삼간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5.18기념식장에서 <방아타령>을 연주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5.18영령들과 오월정신을 깔아뭉개거나 폄하하고 조롱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엄숙하고 경건하게 추모해야 할 5.18기념식장을 정부가 나서서 그 의미를 폄하하고 격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구 주월동에 산다는 김아무개(41)씨는 "할 말이 없다"면서 "어떻게 미치지 않고서야 5.18묘지에서 <방아타령>을 연주할 수 있냐"고 개탄했다. 김씨는 "아무리 세상이 거꾸로 간다지만 이건 아니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5.18국립묘지에서 만난 한 5.18유공자는 "<방아타령>도 웃기지만 <금강산>을 연주하는 것도 웃길 일"이라고 비웃었다. "금강산 찾아가는 금강산 관광 막은 것이 이명박 정부인데 그런 정부의 총리가 입장할 때 '금강산 찾아가자...'고 연주하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한편 5.18유족회·5.18부상자회·5.18구속부상자회 등 5.18 관련 세 단체 회장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18 유가족 대표의 '5.18민주화운동 경과보고'가 5.18기념식 행사에서 제외된 것에 항의하는 뜻으로 5.18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경찰은 경찰기동대 50개 중대 약 3500명과 경찰 약 500명 등 약 4000명을 5.18국립묘지 인근에 배치했다. 이 대통령 대신 5.18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는 정 총리는 '대통령 기념사'에서 '격하'된 '총리 기념사'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