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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방된 나라'가 맞습니까?"

"대한민국, '해방된 나라'가 맞습니까?"

[망국 100년] 연재를 시작하며

기사입력 2010-01-01 오전 1:45:22

 

여러 각도에서 살필 수 있는 문제입니다. 역사학도로서 저는 식민지 경험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봅니다. 통치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식민지 사회를 불건강한 구조로 이끄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정책이 건전한 '지도층'의 성장을 가로막고 '협력자' 집단에 그 역할을 맡기는 것입니다.

협력자로서 성공하는 조건은 기술적 능력이 있으면서 사회의식이 약한 것입니다. 개인의 영달을 바라는 '향상심'으로 효율적 식민통치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일제하의 '실력자' 계층으로 자라났고, 그중 심한 경우는 향상심의 목표를 자신이 황국 신민이 되는 데 둔 친일파도 있었습니다. 이 집단이 해방 후 대한민국 근대화의 주역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뉴라이트 논객들이 있는데, 일리 있는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의 소위 '지도층'은 일제 시대의 친일파가 일본에 의지한 것처럼 미국에 의지하는 행태를 많이 보여 왔습니다. 자기가 속한 이 사회의 안위는 종주국에서 책임질 일로 생각하면서 종주국이 원하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함으로써 개인의 영달을 꾀하고, 스스로 종주국 백성이 되기 바라는 행태를 그대로 물려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는 대한민국이 독립국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친일파가 대중을 조작한 미끼는 '근대화'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 의식 없는 지도층이 대중을 조작한 미끼는 '경제 성장'입니다. 두 구호는 서로 닮은꼴입니다. 실제로는 종주국의 이익에 영합하면서 이 사회를 이롭게 하는 일처럼 가장하고 일체의 사회 의식을 억압한 것입니다. 진정한 '해방'을 위해서는 그 허구성을 밝힐 필요가 있습니다.

뉴라이트 논객들이 '문명의 길'이라 떠받든 것은 결국 '근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지요. 한국에 근대적 공장도 세워지고 교통 시설도 만들어지고 교육, 의료 등 근대적 사업이 시작된 것이 일본의 식민 통치 덕분이라는 겁니다.

히말라야 오지나 남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것도 아닌 한국이 일본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그런 변화를 겪지 않고 '은둔의 나라'로 남아 있었을 수 있을까요? 20세기 중엽까지 쇄국 정책을 지키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일본 통치 밑에서 겪은 근대화 정도는 어떤 상태에서라도 겪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20세기 초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요는 근대화라도 어떤 근대화였냐 하는 질(質)의 문제입니다. 산업화 중심의 유럽식 근대화는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갈라지는 구조 분화의 과정이었습니다. 통치국인 일본은 착취자 입장에서 근대화의 양지에 서고 식민지 한국은 피착취자 입장에서 음지에 서게 된 데 국권 상실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양지쪽 근대화의 무엇보다 부러운 점은 전통의 발전과 근대화 과제를 얼마만큼이라도 융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멀리 볼 것 없이 당장 일본을 보세요. 일본에서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 속에서도 전통의 힘이 한국보다 훨씬 더 큰 몫을 맡고 있습니다. 근대화를 겪으면서도 전통의 힘을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두었기 때문에 탈근대 상황의 새로운 변화 앞에서도 그 힘에 의지할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에 대한 믿음을 잃은 것이 식민지 경험의 가장 큰 피해라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전통'이라 하면 흔히 근대성과 대비되는 과거의 물건으로 여기는 경향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이어주는 정체성의 연속은 미래를 헤쳐 가는 데도 지표가 됩니다. 나라 잃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보다, 침략자를 미워하는 것보다, 전통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해방"을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유럽식 근대화와 다른 '전통적 근대화'를 생각해 봅니다. 조선 후기의 학자와 정치가들은 폐쇄적 농업사회 체제의 한계를 느끼고 질서의 변화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농부와 직공, 상인들도 상황 변화에 적응하려 여러 모로 애쓰고 있었습니다. 산업화 중심의 유럽식 근대화를 부득이 채택하게 되었더라도, 전통적 근대화의 노력을 어느 만큼이라도 접목시킬 수 있었다면 지금처럼 참혹한 상황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부터 쓸 글이 어느 범위를 다루게 될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1910년의 망국의 의미를 '전통의 상실'이라는 관점에서 최대한 밝혀보려 애쓰겠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무거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미안합니다만, 저는 당분간 무거운 마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프레시안>이 신년 기획으로 선보이는 '망국 100년'은 매주 화, 금 이틀간에 걸쳐서 연재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합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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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