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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생각해봅시다

채점을 2초에 할 수 있다고?

채점을 2초에 할 수 있다고?
10월 13~14일 치른 국가성취도 평가 채점에서 나타난 문제점
09.11.06 09:44 ㅣ최종 업데이트 09.11.06 09:44 송진숙 (dulggot)

교사들 한자리에 모아 채점에 대한 연수를 하다

 

며칠 전(27일) 같은 직장 동료가 출장을 다녀왔다. 10월 13,14일 이틀에 걸쳐서 평가한 시험 채점에 관한 연수였다. 필자가 재직하고 잇는 학교에선 각 교과별로 1명씩 5명이 다녀 왔다. 이날 연수에 서울시내 교사들 1800명이 동원되었다.

 

다른 지역은 모여서 합숙하며 채점을 한다는데, 서울은 시범적으로 온라인 채점을 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답안지를 고속으로 스캔해서 올려주면 각자 맡은 부분을 컴퓨터로 채점을 한다. 연습 채점을 세 번 하고 본채점을 한 번 하고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연습 시간은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9시까지다. 그 시간이 지나면 사이트가 닫혀서 모의채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의채점 문항은 10문항 정도라 가볍게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퇴근 이후에 밤을 이용해서 하란다.

 

요즘 대부분 가정에 PC가 있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있을 순 없다. PC가 없는 사람은 PC방에 가서라도 해야 되고 가정에서 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은 새벽같이 출근해서 학교에서 해야 한다.

 

답안지 한 장 채점하는데 2초면 가능하다

 

그렇게 연습 채점을 하고 난 다음 본채점은 5일에 걸쳐서 하는데 일과시간 짬짬이 1인당 16,000매에 달하는 답안지를 채점해야 한다. 물론 간단하기야 하다. 각자 맡은 문항이 있어서 동료한테는 2문항만 맡겨졌다. 평가원쪽의 말로는 답안지 한 장 채점하는데 2초 걸린다고 했다. 정말 2초에 가능할까? 집중해야 하는 일인데 수업하며 그밖의 업무 처리하며 집중해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 말이 사실이라면 9.9시간이 걸린다.

 

짧은 단답형의 서술형 문제다. 제대로 정답을 쓴 경우엔 그나마 채점이 쉽다. 그러나 학생들이 답을 바꿔썼을 경우엔 헛갈리는 수가 있어 시간이 좀더 걸린다. 1장당 2초론 어림도 없고 5초는 걸린다고 했다. 1장당 5초씩 16,000매를 채점하려면 22시간이 걸린다. 

 

퇴근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다른 일 다 젖혀두고 꼬박 5시간을 매달려서 채점을 해야 끝나는 일이다. 가족들은 뒷전으로 하고 하루에 5시간씩 5일이나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일이다. 게다가 사람이 기계처럼 5시간을 똑같은 속도로 채점할 수 있을까? 고려한다는 명분하에 주말을 끼워 넣었다. 금,토 월,화,수요일까지 마감하라는 것이다.

 

굳이 서술형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주관식 출제를 한 이유가 뭐냐고

 

더욱이 서울은 시범적으로 온라인 채점을 하는 것이고 지방은 교육청에서 정해준 장소에 모여서 합숙채점을 한다. 말이 서술형 문항이지 사실상 몇글자 안되는 단답형의 주관식 문제이다. 객관식으로 출제를 해도 지장이 없는 문제를 굳이 서술형이라는 이름을 빌려 주관식 출제를 해서 이런 넌센스식의 채점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작년에도 서술형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가 많았다고 한다. 진정한 서술형의 문제는 그 많은 학생들의 답안지를 짧은 시간내에 채점한다는 것이 수월치 않을 것이기에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 단답식의 문제를 낸 것이리라.  이런 간단한 서술형이라면 충분히 객관식으로 대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채점교사 자격은 경력 5년 이상의 경력자로 1학년 수업을 담당하는 교사들이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보니 채점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같은 속도로 채점을 하기엔 무리가 있었던 게다. 5초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10초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다. 10초씩이면 1분에 6장인데 16000매를 모두 채점하려면 44시간 이상이 걸릴텐데 옆에서 보기에 안쓰러웠다.

 

서버용량도 안 따져보고 동시접속을 시켰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학교컴퓨터는 속도가 느리다. 1800여명이 직장에 있는 동안 수업이 빈 틈을 타서 채점해야 하므로 동시에 접속량이 몰리면서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채점하는데 머리도 아프거니와 속이 터진다. 주어진 시간내에 처리하려면 아이들 자습을 시켜야 할 판이다.

 

결국 담당자한테 몇번에 걸쳐 쪽지를 보냈고, 이의제기를 한 사람이 많았는지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과목별로 접속시간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대 동시 접속량을 줄였다. 밤새다시피한 동료는 충혈된 눈으로 출근해 있었다. 치매 엄마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후배는 결국 밤늦게 PC방에 가서야 일을 마쳤던 것이다.

 

평가 시행 때부터 문제 투성이었던 시험을,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이 평가를, 내년에도 또 하려나?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일본에선 폐지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