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촛불

구형, 그건 검찰만의 의견일 뿐이다

구형, 그건 검찰만의 의견일 뿐이다

[김종배의 it] 검찰의 '용산' 구형, 그리고 언론

기사입력 2009-10-22 오전 9:46:37

 

 

검찰이 '용산' 농성자 9명에게 중형을 구형했습니다. 적게는 징역 5년, 많게는 징역 8년을 구형했습니다.

그러면서 밝혔습니다. 구형에 앞서 1시간여 동안 준엄한 목소리로 의견을 밝혔습니다. 농성자들의 "극렬한 투쟁"과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대비한 후 꾸짖었습니다. "폭력으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긴다면 사회적 약자들이 모두 화염병을 들고 거리로 나서게 될 것"이라고 했고, "불법행위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보다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농성을 한 피고인들을 엄단하지 않으면 제2의 용산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토 달지 않겠습니다. 검찰의 유죄 의견이, 검찰의 구형량이 적합하고 적정한 것인지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건 법원의 몫입니다.

다른 걸 말하려고 합니다. 검찰의 구형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입니다.

충실하게 전합니다. 결심공판이 열리면 검찰의 유죄 의견과 구형량을 상세히 전합니다. 피고인측의 항변을 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액세서리입니다. 검찰을 주어로 삼은 문장을 길게 배치한 후 끄트머리에 간략하게 몇 줄 걸치기 일쑤입니다. 용산 참사와 같이 국민적 관심과 논란이 큰 사안의 경우엔 덜하지만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엔 심합니다. 검찰은 주체이고 피고는 객체입니다.

타당한 보도태도가 아닙니다.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에 가중치를 두는 편향된 보도태도입니다.

검찰의 구형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객관적인 것도 아닙니다.

검찰이 공소를 제기하는 행위 자체가 유죄 의견을 밝히는 것입니다. 검찰이 구형을 하면서 덧붙이는 의견 또한 공소 취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고인을 몰아치고 구형량을 높이는 게(법원 선고 형량에 비해) 일반적입니다. 간단히 말해 검찰의 구형은 공소 제기에 덧붙이는 '일방적인' 행위입니다.

검찰의 이런 일방적인 행위를 도드라지게 보도하면 피고인은 이중으로 피해를 입습니다.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 입장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중에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피해를 회복하기는 어렵습니다. 재판에 넘겨지는 순간 손가락질이 시작되는 우리 사회 풍토에서 검찰 구형 보도는 마치 법적인 판단이 이뤄진 것과 같은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 검증된 사실처럼 간주되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구형이 마치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뉴스가 나왔습니다. 검찰이 집시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에 대한 1심 무죄 선고율이 계속 상승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2007년 2.6%에서 2008년 3.2%, 올해 7월까지 4%로 계속 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더 있습니다. 대검 중수부가 지난해 기소한 사람에 대한 1심 무죄율이 27.2%로 일반사건 평균 무죄율 1.5%보다 18배 높았고, 2심과 3심 무죄율은 32%, 67%를 기록했다는 뉴스도 있었습니다.

이 수치가 말해줍니다. 복장이 터지는데도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지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용산 참사' 검찰 구형, 30년 전 인혁당 재판 보는 듯"

[현장] 남편 구형에 오열하는 부인…"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기사입력 2009-10-22 오전 8:34:06

 

끝내 정영신 씨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옆에 있던 동료의 어깨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재판에서 겨우 참아왔던 눈물이 동료의 다독거림을 참지 못하고 터져 나왔다. 빨갛게 상기된 그의 얼굴은 금세 눈물범벅이 됐다. "구형인데 그 정도도 예상 못했어?" 동료가 애써 위로를 했지만 그의 눈물은 멈출 줄 몰랐다.

용산 참사로 구속 기소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의 부인인 정영신 씨는 21일 검찰의 구형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그렇게 재판정을 떠나지 못했다. 고 이상림 씨의 부인인 전재숙 씨도 그런 며느리를 지켜보며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날 이충연 위원장은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죄로 검찰에게 징역 8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고인의 유족인 점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고 이충연 위원장의 구형 배경을 밝혔다. 같이 농성을 벌인 나머지 8명에게 대해도 5년~8년의 구형을 내렸다.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죄는 징역 5년 이상 징역에 처한다. 유족뿐만 아니라 이날 재판에 방청객으로 참석한 철거민에게는 예상치 못한 중한 구형이었다. 검찰이 구형을 밝히자 재판정에서는 곳곳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급기야 피고인이 최후 변론을 할 때는 재판정이 눈물바다를 이뤘다.

▲ 검찰 구형이 끝난 직후 용산 범대위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고 이상림 씨의 부인이자 이충연 위원장의 어머니인 전재숙 씨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전재숙 씨 옆으로 이충연 씨의 형 이성연 씨, 부인인 정영신 씨. ⓒ프레시안

피고인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

징역 8년 형을 구형 받은 김모 피고인은 "고인께… 너무 안타깝고…"라고 말한 뒤 뒷 말을 잇지 못했다. 방청객에서 "울지 마, 똑바로 해"라며 울음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판사는 피고인에게 "나중에 하라"고 했지만 김모 씨는 잠시 뒤 "다신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겨우 변론을 마쳤다.

이충연 위원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더불어 사는 세상이었다"며 한숨을 내쉰 뒤 "역사에 남을 판단을 부탁드리겠다"며 힘들게 판사에게 호소했다. 일순 방청석 곳곳에서는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모 씨는 "철거민이 아니었을 때 가족과 야외로 놀러 다니고 취미 생활을 하던 때가 지금 더욱 떠오른다"며 "가난하긴 했어도 자식들을 달래가며 잘 키웠는데 여기까지 오다 보니 그게 맞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피고인의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방청객도 이들이 변론을 하는 내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변호인 "20년 전 공안 사건을 접한 법정 분위기였다"

피고인 변론을 맡은 김형태 변호사도 마찬가지였다. 최후 변론을 하는 그의 코는 빨게 있었다. 그는 이날 검찰의 구형을 두고 "20년 전 공안 사건을 접한 법정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30여 년 전 인혁당 재판에서 들이댄 칼이 여기에서도 나온 듯하다"며 "이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을 받은 피고인이 지금은 무죄 판정을 받았다"며 "용산도 마찬가지로 20~30년이 지난 뒤 수사 기록 3000쪽이 공개돼 재심의를 받는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리라 90% 확신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자본이 이익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그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시민을 극악무도하게 몰고 가는 경찰과 검찰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 지금 피고인들"이라며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면 나도 망루에 올랐을 것"이라고 피고인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외견상으론 철거민과 경찰이 충돌한 게 용산 참사이지만 이 뒤에는 여러 가지가 섞여 있다"며 "하지만 재판에서는 이러한 뒷 배경은 사라지고 맨 앞에 애꿎게 부딪친 경찰과 철거민만 남아 죽거나 징역 8년이라는 구형을 받았다.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에 김 변호사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일방적으로 이들을 매도하는 게 아니라 관대한 처벌을 당부한다"고 재판부에게 부탁했다.

▲ 피고인 변호인단 김형태 변호사가 검찰 구형 직후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프레시안

범대위 "검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무리한 구형 남발했다"

"아이고 내 새끼…. 어떡해…."

검찰 구형 소식을 접하고 오열하던 전재숙 씨는 결국 법원 로비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는 재판이 끝난 직후 서울중앙지법 2층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구형을 "적반하장"으로 규정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전재숙 씨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충연 씨의 형인 이성연 씨는 "우리 가족이 철거민이 된 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결혼한 지 1년밖에 안 된 제수씨가 남편을 8년이나 기다려야 되게 생겼다"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정영신 씨는 기자회견 내내 얼굴을 숙인 채로 눈물을 흘렸다.

용산 범대위는 "공판 과정에서 밝혀졌듯이 경찰의 진압은 적법한 공무 집행으로 볼 수 없을 뿐더러 검찰 역시 발화 원인을 정확히 증명하지 못했다"며 "철거민에게 덧씌워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혐의는 무고"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찰과 검찰에게 각각 살인진압과 무고죄를 물어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범대위는 "검찰은 아무런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채 무리한 구형을 남발했다"며 "이는 정권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의도적인 거짓 수사에 다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안 검찰,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철거민에게 일방적으로 과도한 죄책을 물은 검찰을 강력 규탄한다"며 "재판부의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환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