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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약체’일 수밖에 없는 이유

MB정부에서 국무총리가 ‘약체’일 수밖에 없는 이유

국내정치/이명박행정부 2009/09/06 07:08 최재천


1. ‘총리가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세상의 착각에 불과하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의 정치적 멘토인 김종인 박사의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 총리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는데, 우리 정부조직상 총리의 위치를 보면 권한이 참 없다. 말이 총리이고 내각 조정을 한다고 하지, 총리는 내각에 참여해서 발언할 수 있는 권한 말고 장관들 불러서 정책 조율할 수 있는 기능이 별로 없다. … 정 총장도 총리를 맡은 이상은 그걸 각오하고 가는 수밖에 없다.
정운찬 총장도 정부 내부 사정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총리가 상당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도 어느 정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총리로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할 수 없는 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잘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9월 4일)

                                                                 (오마이뉴스)

2. MB 정부의 총리 역할은 최약체일 수밖에 없다

그렇습니다. 총리라는 제도 자체가 지극히 제도적으로 취약하고 무책임한 제도인 건 누구나 인정합니다. 문제는 이 정부 들어 총리의 지위가 더 약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MB 정부 인수위 시절 정부조직법 개정을 통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저의 마지막 국회 당시 이 점을 분명히 지적했던 속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먼저 현행 정부조직법(제18조) 상 국무총리실의 기능입니다.
“① 국무총리의 직무를 보좌하고 각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의 지휘·감독, 사회위험·갈등의 관리, 심사평가 및 규제개혁에 관하여 국무총리를 보좌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밑에 국무총리실을 둔다.
② 국무총리실에 실장 1명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③ 국무총리실에 국무차장 1명과. 사무차장 1명을 두되, 각 차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2008. 2. 29. 개정)

지난 정부 당시 정부조직법(제20조) 상 국무총리실의 기능입니다.
“①각 중앙행정기관의 행정의 지휘·감독, 정책의 조정, 심사평가 및 규제개혁에 관하여 국무총리를 보좌하기 위하여 국무총리 밑에 국무조정실을 둔다.
②국무조정실에 실장 1인을 두되, 실장은 정무직으로 한다.
③국무조정실에 차장 2인을 두되, 정무직으로 한다.“

‘정책조정’ 기능이 국무총리실의 기능에서 빠져 버린 겁니다. 행정 각부를 직·간접적으로 통할하기 위해서는 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이 핵심입니다. 그 기능이 있어야만 각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기능을 없애버렸습니다. 어디로 갔겠습니까. 청와대로 갔습니다. 당연히 청와대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청와대가 직접 정책조정 기능을 담당하고 각부를 직접적으로 통할하겠다는 헌법적 의지의 표현이었지요. 사실 순수한 대통령제 입장에서는 그게 정답입니다.

한 가지 더 이전 정부조직법 제21조에는 국무총리비서실 조항이 있었습니다. 비서실장까지 둘 수 있었지요. 하지만 총리실의 권한이 약화되면서 비서실장 제도도 없애버렸습니다. 당연한 셈이지요.


3. 국무총리제는 ‘매 맞는 아이’의 역할에 불과하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국무총리제도의 의의를 “부통령제를 두지 않는 상황에서 대통령 유고시 그 권한 대행자가 필요하고, 대통령제의 기능과 능률을 높이고, 대통령의 의견을 받아 정부를 통할·조정하는 보좌기관이 필요하다는 데 있다(헌법재판소 1994년 4월 28일 89헌마221)”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긍정적 의미의 헌법적 측면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국무총리제도를 평가한 학자가 있습니다. 미국 헌법전문가 조지형 교수입니다.
우리 헌정사에 있어서 국무총리제도는 ‘매 맞는 아이’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왕자나 고귀한 신분의 아이들이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그들을 때리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매 맞는 아이’입니다. 망나니처럼 행동하는 왕자가 잘못을 저지르면 매 맞는 아이를 호되게 처벌합니다. 그러면 왕자가 ‘매 맞는 아이’를 보고 동정심 혹은 동료애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헌법 아래에서는 아무리 ‘책임’ 총리의 책임을 강조하더라도 국무총리는 국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조지형, 헌법에 비친 역사, 푸른역사 펴냄 263면)“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는 ‘매 맞는 아이’요, ‘방탄 총리’요, ‘대독 총리’요, ‘얼굴마담 총리’요, ‘허세 총리’라고 불리워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라면 괜찮지요. 보다 근본적 문제는 “우리 국무총리제가 대통령의 권위를 더욱 신비화하고 신격화하는 경향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국무총리가 있음으로 해서 대통령은 국정운영과 정책시행에서 어떤 잘못도 할 수 없는 무오류의 초헌법적인 존재로 자리잡게 되는 것(조지형)”입니다. 적확한 지적이지요.

그래서 대한민국 정치 문화에서는 대통령이 아무리 잘못을 하더라도 “여전히 대통령은 일상적인 정치 현장을 훌쩍 초월해 있는 신적인 존재,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간주”되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국무총리의 ‘이데올로기적 효과’인 셈이지요. ‘그래서 결국 국무총리제도는 대통령제를 더욱 권위적으로 만드는 독소적 제도(조지형)’가 되고 맙니다.


4. 민주당의 끊임없는 구애와 짝사랑이 실패로 돌아간데 대한 서글픔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국무총리 제도의 근본적 의미에 대한 새로운 성찰과 묵상의 틀을 정 총장이 제공하게 된 것 또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시 헌법전을 들춰보고 국무총리제도에 대한 여러 문헌들을 읽어보는 계기가 됐으니까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분명합니다. 국무총리제도는 헌법적으로 문제가 많은 제도입니다. 출발부터가 그랬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내각제 헌법 초안을 대통령제로 갑작스럽게 바꾸면서 도입된 기형적 제도입니다. 형식은 내각제의 수상입니다만, 실질은 내각제의 장관 수준입니다. 대통령제의 선임장관 수준입니다. 그 정도 의미밖에 없습니다. 이런 제도가 대통령의 권위주의와 신비주의를 강화하는 제도적 수단으로 악용돼 왔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신성불가침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각제적 요소를 살려 견제와 균형의 기능을 살려 나가기보다 대통령의 명을 받아 대통령의 권력에 철저히 봉사하는 제도보장으로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인수위 시절 정부조직법이 개정됐습니다. 국무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이 삭제되었습니다. 결국 헌정사 상 가장 취약한 국무총리 제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첫째가 한승수 총리였고, 그 둘째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되는 셈입니다. 헌정사도 늘 때로는 희극으로, 때로는 비극으로 우리 앞에 얼굴을 내미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