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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청소년 문학

김중미를 만나다

2009년 8월 16일 일요일 날씨 맑았으나 무척이나 후덥지근 했다.

 

15일부터 1박 2일로 전국 동화읽는교사모임이 동구수련원에서 있었다.

동구수련원을 청소년 수련마을로 오인해서 그 쪽을 들렀다가 한참을 헤매다가 찾아오니 집에서 출발한 지 꼭 한 시간 사십분 뒤였다. 마지막에 개인 소개를 하라고 해서 제주도 이호석샘이 강아지똥을 제주도말로 바꾼 버전을 설명하고 읽어보라고 하는 부분부터 함께 했다. 지역 언어를 살려서 쓰는 것은 우리 말을 풍부하게 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 하지만 굳이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사투리를 일부러 끄집어 내어 책으로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전해줄 필요가 있을까. 그 노력에 더 좋은 책을 아이들과 접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라진 옛말이 얼마나 많은가. 새로워진 말도 많은 것처럼 그렇게 언어의 순환도 생성과 소멸이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제주도 말로 되살린 책이 더 잘 팔리고 그들의 언어로 익숙해져서 아이들이 제주도 사투리의 의미까지 알려고 노력하면서 일상생활언어로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것은 지금의 생활 속에 억지로 이론적인 가설을 끼워넣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노력은 가상하나 실제 얼마나 쓰일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무게를 둔다면 괜한 일에 너무 힘을 많이 쏟는 격이라서 하는 말이다. 오히려 제주도 작가들이 작품 속에서 그렇게 하나 둘씩 찾아내어 녹여내는 것이 더 현실성 있는 일이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다음 시간은 김제곤 샘이었다. 똑같은 강의를 들은 터라 맨 앞에 앉아 있다가 맨 뒤로 갔다. 너무 불편해 할까봐, 그리고 '꽃섬'을 꼼꼼하게 읽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읽어보려는 요량으로 그렇게 했다. 마침 덕하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그 옆에 앉아서 열심히 책을 읽었다. 귀동냥도 해가면서. 예의 질문도 해서 혼란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대답도 같았다. 윤석중의 개인을 비호하거나 아동 시단에 끼친 영향을 두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동시의 시작과 궤를 같이하는 그이 첫 동요집이 갖고 있는 작품성은 다시 재조명해봐야 하며 그런 까닭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아집이 있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들이 그의 이름을 이용한 측면이 더 크고 그래서 고착시킨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그저 색동회나 만들어서 활동하는 것에 그치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교과서에 오류와 오염된 절름발이식 동시가 실리기 시작한 것도 그런 부분의 하나이다. 그들은 윤석중 이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추대라는 형태로 갖가지 자리에 얹혀 지낸 격이라는 것이다. 듣는 사람들을 위해 오류를 수정해야 할 듯 해서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을 줄이면 그랬다.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는데, 일정 부분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을 먹고 사진 촬영이 있었다. 잘 하는 짓이 아인데 맨 앞에서 앉아서 제곤, 덕하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어도연 깃발 바로 옆에서. 습한 기운 때문에 산책을 나갔다가 더위 때문에 땀을 흘렸다. 동구 수련원 들어오는 입구가 허름한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있을 듯한 그런 옹색하기 짝이 없는 시설들이 길을 따라 있어서 처음에는 잘못 왔나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 넓은 수련원에 우리와 어느 대학생들 팀 한 팀이 고작이었다. 더구나 멀리 행글라이더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서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서울지회에서 '꽃섬' 발제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제로 서울지회장 김명수 샘이 사회로 책토론을 이끌어 갔다. 그런데 주제가 '사회적 참여와 책읽기'여서 그런지 모두들 책읽기보다는 사회적 참여 쪽에 무게가 더 실린 발언이 계속 이어어지고 있었다. 이붕희 샘이 일제고사 반대 서명을 했다는 것으로 곤욕을 치룬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의 실천과 머릿 속 판단이 일치하지 못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 솔직하게 토로를 했다. 이어 오세란, 남정화, 구미숙 샘이 일제고사와 관련된 생각들을 이야기 하였다. 특히 남정화가 자기들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아달라는 부탁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동화의 힘은 그렇게 세다. 아니 진실의 힘은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년을 문학이라는 형태로 담고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수천년 그런 형태로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구미숙샘을 김샘으로 착각해서 실수를 했다. 너무도 미안해서 가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겨울의 모습보다 훨씬 안정이 되어 있는 표정이어서 다행이었다. 작품 이야기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덕하가 한길이의 내성적인 성격과 작품 설정에 있어서 병역거부라는 방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제기를 했지만 그렇게 활발하지 못해서 아쉬웠다. 한 마디도 안한 사람들이 많았던 탓이다.

 

뒤풀이에는 맥주보다 쥬스가 더 많았다. 풍성한 포도와 간식이 수북했다. 결국 자정이 한 참 지나자 남은 사람은 덕하, 김선희, 이호석이었다. 밤이 이슥해지고 결국 그동안 마음에 남아 있던 동화읽는교사 게시판 문제로 돌아왔다. 이호석은 발뺌을 했다. 내게 한 말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글로 한 것은 영원히 남는 것인데. 책 읽어주는 일은 일상활동이라고 하면서 개인 게시판이 아니라 전국 교사들의 네크워크를 하자는 말이 요지였다. 그런데 뒷말만 기억하고 있었다. 타당하니까 앞 말이 어떤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그 동안 전국전인 네크워크로서 활용이 되었는가 하면 거의 죽어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그나마 동화읽는교사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책으로 만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조회수가 1000이 넘어가는 것 속에 알 수 있었듯이 그나마 그 게시판을 활용할 수 있는 지점도 분명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한 공부 내용이나 이런 것들을 생각처럼 펼쳐보이고 의견을 구하거나 했어야 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내가 불편했던 것을 드러내자 김선희샘이 수습을 했다. 주로 뒷쪽에서 그 의미를 찾아가며. 그런데 이호석의 단점은 비판을 하고 그 대안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을 했지만 자기 주장을 담은 글을 보면 그 또한 비판한 만큼의 성찰이나 생각을 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다가서지 않는 부류라는 딱지를 붙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썩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은 아니다.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저렇게 드러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대체로 내게는 어색하다. 그냥 있어도 알아줄 만큼의 값어치면 가만히 있어도 알려진다. 그런데 알리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모습에서 잘난척 아는 척하면서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보여서 자꾸 거리감을 갖게 할 뿐이다.

앞으로 교사위원회 운영에 대한 고민이 더 큰 김 샘은 여러 의견을 내어 놓았지만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5년차 미만인 사람들은 어렵다고. 그리고 그 위원장 자리는 함부로 아무나 할 수 있어서는 안된다고. 거론되는 사람들 모두 썩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덕하는 건강 때문에 안된다고 내가 거절을 했다. 그렇게 하면 차라리 내가 하겠다는 말과 함께. 내년까지 애써 줄 김 샘이 지금의 상황을 이야기 해서 어느 정도 피로도가 쌓여 있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지역이 가장 안정적으로 바람직한 모습으로 운영을 해나가는 셈이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올리 만무이다. 새벽이 밝아오려고 희뿌연해지는 창문을 보고 있다가 설풋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으니 잠이 깼다. 음식은 조미료를 덜 넣어서 역겹지 않았다. 맛나게 다 먹었다. 그리고 어제 줄쳐 가며 읽던 꽃섬을 마저 읽었다. 곰팡이 냄새를 없애려고 락스를 얼마나 뿌려댔던지 그 강의실에서는 에어컨을 틀어놨지만 눈이 따갑고 간지러워 혼이 났다.

김중미 샘이 시간에 맞춰 오셨다. 유랑극단 아이들과 춘천에 있다가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오신거란다. 특유의 진솔함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자기가 문학을 하게 된 이야기부터 작품에 대한 이야기까지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무리없이 진행을 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말은 삶은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자기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병역거부라는 문제는 '오태양'씨의 병역 거부에서 충격을 받아서 작품으로 쓰고 싶었고, 마침 신생 출판사의 제의가 들어와서 시작한 일이라는 것이다. '종이밥'도 낮은산에서 첫 시작이었단다. 그렇게 놓고 보니 유명 출판사 작품은 드물었다. 이 또한 가난한 이들의 연대활동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은 용산참사 현장에서 살고 계시는 신부님 이야기를 녹취하고 있다고 했다. 문학 시작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쓰기 시작했단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경우도 밤을 꼬박 새우기를 세 달을 했고, 이름도 '김미중'으로 보내서 창비에서 확인 전화를 했을 때 남편도 자기도 그런 사람 없다고 했단다. 나중에 원종찬이 확인 전화를 해와서 알게 되었다고 해서 좌중이 웃음 바다가 되었었다. 퇴고도 못하고 보낸 작품이 뽑혔던 것이다. 그만큼의 진실과 문학적 힘이 어우러졌겠지만 김중미 작품에는 문학적인 어떤 꾸밈이나 섬세한 장치보다는 진실의 힘이 아직도 훨씬 압도한다. 그래서 작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마치 권정생처럼 말이다. 문학수업을 따로 하지 않았던 만큼 앞으로 작품을 써가면서 보완되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래도 욕심을 한껏 내세우면 문학적이 성과에 대해서도 더 정진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 자란 이야기를 하면서 부모님이 평북 의주라는 말에 한동안 반가왔다. 어렸을 때 들었던 말을 쓰기 때문에 우리 말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덕하의 지적에 대답한 말이다. 그랬구나 싶었다. 이제는 대중들과 만나서 격의없이 이야기를 자연스레 풀어내는 것이 보기 좋았다. 가슴 뭉클한 부분이 담백한 자기 고백 속에 있어서 더 좋았다. 작가 사인을 받지 않는 편인데 마지막으로 받았다. 내가 꿈꾸는 사회변혁은 전국의 교사들이 동화책을 읽어주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아이들을 변화시켜서 전체 사회의 변화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 기저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는 말을 그대로 담아서 써주셨다. 용기를 내어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애써달라면서. 그래서 또 한번 내 자신을 추스릴 수 있었다.

헤어지면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리고 인천지역 샘들을 역까지 태워다 드렸다. 그 중 한 샘은 기간제를 하면서 겪었던 여기 지역의 풍토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박장대소를 했다. 정말 어려운 지역이라고. 

 

겨울에도 알찬 연수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고생한 '은구비'에게 칭찬과 격려를 듬뿍 해주고 싶다. 단결되면 못할 일은 없는거니까. 특히 진샘의 활달함과 수술까지 했으면서도 끝까지 참여해 준 강무석 샘에게도 건강을 염려하며 감사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모두 고생을 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사진이 올라오면 얼른 갈무리를 해두어야겠다.  

 

 

 

 1. 준비물 : 세면도구(비누, 치약, 칫솔, 샴푸 등), 수건, 개인컵, 모기약(모기향)
 2. 읽어올 책 : 김중미의 "꽃섬 고개 친구들"
 3. 일  정  :
  첫째날  늦은 2시 까지 등록
         ☞ 벽보, 일정표 맡은 옹달샘 모둠은 미리 와서 준비 부탁드려요.
            접수는 동화랑 사정으로 은구비에서 합니다.
          2시~4시 : 지회별로 소개 및 활동사례 발표
          4시~6시 : 김제곤의 '동시, 동요' 강의
          6시~7시 : 단체사진 촬영 및 저녁식사
          7시~10시: 주제토론(책읽기와 사회적 참여)
                    김중미의 " 꽃섬 고개 친구들" 발제(서울, 제주)후 토론
          10시~   : 뒷풀이
 둘째날   8시~9시 : 아침식사
          9시 30분~ 11시 30분 : 김중미 작가 강연
                               ("문학으로 사회적 문제를 말하다")
          11시 30분 ~ 12시 : 회계보고 및 정리
          12시~늦은1시 : 점심 밥 먹고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