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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위하여

중노위 심판 사건을 다녀와서

중노위 심판 사건을 다녀와서


2009년 6월 30일 중노위 노동자위원으로서 첫 사건이 내게 배정이 되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은 누구나에게 떨리고 흥분되고 걱정되기 마련일 것이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고 조사보고서를 줄쳐 가며 읽어보기를 몇 번을 했는지 모른다. 참고자료로 비슷한 사건이 있는지 검색을 해보고,  열심히 준비하였다.

첫 사건은 사용자가 감사원의 지적 사항을 빌미로 자의적으로 사용자 부서를 지정하여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는 근로자들의 구체적인 업무 권한이나 내용도 파악하지 않은 채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고 탈퇴를 거부한 근로자들을 그 의사에 반하여 전환배치한 것은 이 사건 노동조합들에 대한 지배개입 행위 및 해당 조합원들에 대한 불이익취급 행위로서 부당노동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사용자는 감사원으로부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등 관련 규정에 의한 시정요구를 통보 받은 후 해당 부서 조합원들의 자격상실에 대하여 이 사건 노동조합과 수차례 협의를 실시하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하게 됨에 따라 조합원들이 본인의 의사에 따라 스스로 노동조합 탈퇴 또는 전환배치를 선택하도록 하였고 노동조합 탈퇴를 거부하는 조합원들에 한해서만 부득이 생활상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하여 전환배치를 실시하였으므로 지배개입 및 불이익취급의 부당노동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때는 위 사건은 명백하게 지배개입을 한 것이고 부당노동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중노위공익위원 세 명은 모두 사용자측에 서서 질문을 하는 듯 했다. 예를 들어 보직이 과장인데 인사문제에 전결 사항처리를 참여하고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이미 사용자측의 범위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사용자측에 속해 있는 부서이고 위치이면 이는 부당노동행위라고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냐. 통상적으로 어떻게 과장급이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느냐 따위 등을 묻고 사용자측 변호인이 대답하기 좋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 질문에 답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노동위원회임에도 불구하고 공익위원임에도 아랑곳없이 사용자측 보다 더 보수적인 색채 일색이어서 질리게 했다. 노동자 측 입장을 헤아리려는 마음이 있기는 하나 싶었다. 내가 쪽지를 붙이고 질문지를 만들어오고 정성을 들인 것에 비해 그들은 조사서조차 제대로 읽고 오지 않았음을 질의하는 수준에서 알아볼 수 있었다. 정말 그렇구나. 우리 사회가 정말 저런 인간들이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는 한은 절대 변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무섭도록 밀려왔다. 기분이 착잡하다 못해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을 만큼 분노가 일렁거렸다. 그래서 질문 시간을 너무 많이 내가 쓰는 바람에 가까스로 시간을 맞췄다. 보통 시간을 넘기기가 일쑤라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속전속결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공익위원중 의장을 맡은 위원은 아예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질문도 많이 하고 한단다. 쓴웃음이 났다.

  두 번 째 사건은 3시에 시작되었다.  “〇〇〇 식물원 부당해고 구제 재심신청사건’이었는데 초심에서 유일하게 승소해가지고 올라온 것이고, 이미 비슷한 사례가 4건이나 승소한 같은 사용자 소속 노조조합원이었다. 노동자측 담당 대리인은 아주 덤덤하고 상식에 준해서 군더더기 없이 논지를 확실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사용자측의 무리한 해고 과정이 적나라하게 노출이 되었고, 공익위원들조차 사용자측 변호인에게 매운 질문을 하여서 나는 오히려 짧게 질문하였다. 질문도 돌아가면서 시작을 해서 이번에는 세 번째로 질의하게 된 탓도 있었다.    노동자 측에 유리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잠깐 쉬는 시간에 가슴이 타는 것 같아서 자꾸 물을 마셨다.

세 번 째 사건은 4시에 시작하였다. ‘〇〇택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신청’이었는데 사용자측에 사장이 변호인과 같이 올라와 있었다. 노동자 측도 민주노총 소속 대리인과 당사자가 앉아 있었다. 초심에서도 져서 올라온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노동자 측에게 좀 더 말할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공익위원들과 사용자측 위원들은 완강했다. 무단결근에 대해 집요하게 집중 질문을 했고, 평상시에 성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부각이 되도록 질문을 해서 사용자측이 되풀이해서 밝힐 수 있게 하였다. 4대 1의 구성으로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해서 노동조합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해보였다. 심판이 다 끝났는데도 노동자 측은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노동자 측 대리인에게 윽박지르듯이 말을 한 의장이 이상했다. 굳이 그렇게 말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심적 압박이 느껴질 정도로 질책성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곧 이어서 판정회의를 했다. 사용자측에서 먼저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다. 나 역시 노동자 측에 서서 모두 승소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근거를 댄 의견을 제시했다. 결정은 공익위원들 셋이 한다면서 수고했다고 가라는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떤 심판결과가 나올까 몹시 걱정을 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올라가는데 중노위에서 조사관이 전화를 해왔다. 재심 심판결과 모두 초심유지라고 전해주었다.

갑자기 허기졌다. 그렇다면 초심에서 부당노동해고를 인정받은 〇〇〇식물원 건만 이긴 것이다. 〇〇공단과 〇〇택시는 패소한 것이다. 〇〇공단에서 질의를 할 때 정성을 다했는데 지배개입이나 단체교섭 자체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공익위원들이 뭘 근거로 판단을 하겠는가. 그러니 모두 초심 유지로 할 밖에 불과 반시간도 안 되어서 말이다. 좀 더 많이 준비하지 못한 것을 반성했고, 노동자 측 대리인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