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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 책 작가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자리가 마련됐고 망설일 이유 없었다." |
ⓒ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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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에서 어린이 책을 쓰고 그리는 우리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이 사는 곳'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진실로 행복한 어린이 책을 위하여,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서민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자들을 매섭게 꾸짖을 것입니다."
1만7천여 명의 교사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무더기 고발·징계를 통보받고, 창립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본부 사무실이 새벽 압수수색을 당하던 지난 3일 아침, 한 일간지에는 시국선언문이 '또' 하나 햇살처럼 떠올랐다.
어린이 책을 쓰고 그리는 이들 262명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정리돼 있고 '진실로 행복한 어린이 책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어린이 책 작가 시국선언문'이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 알려진 소설가 김중미씨의 이름도 262명 가운데 오롯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김중미씨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괭이부리말'(인천 만석동의 별칭)에서 청소년 공부방을 꾸리며 삶으로 세상에 발언하고 참여해왔다.
이런 삶의 이력으로 본다면 그의 이름이 시국선언문에 버티고 앉은 건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은 강화도에 살면서 인천을 오가며 공부방 일과 집필을 하고 있다. 공부방아이들에겐 '큰이모'로 통한다. 지난 7일 강화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가재가 산다는 개울을 두 개나 건너고 군부대 사격장을 지나 낯선 손님이 와도 짖지 않는 개가 마당을 지키고 있는, 불안하면서도 평화로운 그의 집 마당에서 첫인사를 나누었다.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비롯해 용산 참사,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등에 대한 지적들이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 서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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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중미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이 뭐가 될까 걱정된다. 창의력으로 세상을 이끌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이들이 가진 좋은 기질이 다 망가지고 있다. (정부가) 아이들을 기계로 만들어 가능성의 싹을 다 잘라내고 있다. 어떻게 이토록 철통같을 수가 있나?" |
ⓒ <교육희망> 유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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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동문학 하는 이들 몇몇이 마음을 모아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이라는 카페를 개설한 게 시작이다. 용산참사 문제가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MB정권 이후 도시빈민들이건 교육이건 모든 게 너무 심해졌기 때문에 시국선언에 동참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그랬고 어린이 책 작가도 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자리가 마련됐고 망설일 이유 없었다. 시국선언은 처음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시국선언을 해도 MB정권은 끄떡도 안한다는 거다. 정말 대단하다. 얼마나 더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자꾸 해야 한다."
- 공부방 운동을 20여 년 이상 한 걸로 아는데 느끼는 게 있다면?
"아이들이 피부로 느끼는 게 너무 다르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을 세상 사람들은 '찌끄레기' '곰팡이'라고 한다. 인천에서 가장 꼴찌가 남부교육청인데 가난한 농촌 지역이나 빈민지역 아이들이 느끼는 주변부의 삶은 심각하다. 이를 두고 아이들도 '명박이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아이들도 느낀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보면 문제아들이겠지만.
인천이 학력 수준이 낮다는 것 때문에 보충이 많다. 중학생도 올해부터 보충수업한다. 심지어 0교시까지 생겼다. 그러니 피부로 느낄 수밖에. 교사나 학교에 대한 신뢰가 없다. 그래서 학교를 '정글'이라고 한다. MB정부 들어 학교마다 교칙이 강화됐다. 아이들이 억압이 심하다고 느끼는 건 당연하다.
이곳 강화도 비평준지역이라 교복만 입고 나가도 서열이 된다. '정치' 시간에 선생님이 언론법 등에 대해 너무 보수적으로 얘기하니까 아이들이 문제제기한다고 하더라. 내가 보기에 학교는 이미 죽은 것 같다.
좀 더 일제고사 학교서열화(시골이라 더 민감) 등에 대해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현실을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분위기 형성됐으면 한다. 아이들을 존중해 주는 선생님들이 필요하고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이 왜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나누었으면 좋겠다."
- 학부모 입장에서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어떻게 생각하나?
"일제고사 거부나 지금 시국선언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 전교조가 그동안 너무 작아지고 오해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선생님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하는 것이라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싶어서 반갑고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좀 더 사회 현실에 대해 아이들과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아이들을 충분히 존중하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 작가로서 창작과정에서 위축되거나 자기검열이 강화되는 부작용(?)은 없나?
"내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작가도 아니고(웃음) 크게 영향받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황폐해져가는 데 고민이 깊다."
- 지금 고민하는 문제들이 창작에도 반영되나?
"요즘 나오는 청소년 소설 가운데 좋은 것들도 있지만 시대의 부조리에 깊이 있게 천착하는 소설은 없다. 작가들이 일부러 정면대결을 피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직설적으로 말하지는 않더라도 청소년 문학도 적극적으로 아이들한테 말 걸기를 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앞으로도 계속 할 거다."
- 정부나 교과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MB정부 들어 학교 경직도가 너무 심하다. 일단은 제정신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이 뭐가 될까 걱정된다. 창의력으로 세상을 이끌 수 있을까 걱정된다. 아이들이 가진 좋은 기질이 다 망가지고 있다. (정부가) 아이들을 기계로 만들어 가능성의 싹을 다 잘라내고 있다. 어떻게 이토록 철통 같을 수가 있나? 아이들만 아니면 다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여기에다 무슨 말을 더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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