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아이를 죽였나?
[칼럼] 생활수급자, 공납금 못낸 학생 공개하는 학교가 살인자
지난 7월 6일 촛불집회에 참여한 후 투신자살한 안양 한 여고의 신모 학생의 부모가 10일, “부자들을 위한 교육정책과 학생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학교의 교육 행태가 아이에게 죽음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신 양 부모는 또 청와대에 낸 진정서에서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기초생활수급자 학생 명단을 공개하거나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한 아이들을 학교에 남게 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이건 사실상 살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천박한 나라여서 가난이 죄다. 예전에 서울 강남 지역 빈민촌에 사는 학생들 인터뷰를 읽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그 동네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자기가 사는 지역을 밝히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 촛불집회 유인물 뒤편에 쓴 신양의 유서
집을 숨기는 아이들
빈민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전교생으로부터 왕따를 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어린 학생들이 자기가 사는 동네를 숨긴 채 학교에 다닌다는 인터뷰였다. 우리나라의 비참한 현실에 정말 놀랐었다.
이런 나라에서 기초생활수급자 학생 명단을 공개했다는 건 인격살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이 버젓이 학교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그 어린 아이들에게. 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자살을 안 했어도 그 영혼의 상처가 평생 갔을 것이다.
신 양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는 1급 지체장애인이고 어머니와 함께 노점상을 한다고 한다. 신 양에겐 삶이 전쟁이었을 것이다. 학교가 그 상처를 보듬어주지는 못할망정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 것이다. 잔혹하다.
아래는 <머니투데이>에 소개된 신 양의 유서 전문이다.
모두에게 고함! 하루종일 생각 많이 했음. 중2때부터 쭉 지금까지 어제 그저께 쭈욱…. 무념무상, 동가홍상, 냉면 먹고 연락하고 머리 자르고. 샐러드, 콜라, 아이스 녹차…. 시계줬더니 진짜 화내??
무쪼록 시청가서 안국까지 걸었는데, 이명박 개새꺄 쥐새끼. 담임 이토록 싫은 사람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자신이 괴롭다고 그러면 안 된다?? 자기 편하자고 고백하고 숨기고 하는 거 그건 아니다. 그치??
별로 좋아하던 이도 없었다. 왜냐 내가 진솔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글쎄. 하루 종일 생각하느라 머리가 다 빠질 것 같아. 소스케처럼 죽지 않으면 서로 괴로울 꺼야. 각성한답시고 이러는 거 아님. 글쎄… 나도 모르겠다.
중1때부터인가? 본능? 자기파괴 아니면 현실도피, 혹은 사회부적응이야. 뜻 깊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은 사후로 불편. 아마도 난 천재? 마츠코 일생은 재밌었다…. 죽으려고 몇 번이나 후프를…. 흠?? 하니온 그냥 니는 좀 보고 싶었을 뿐. 만사형통!!!
난 담임과 니얀다 빼고 미워한 사람은 없었어…. 있다면 애증이겠지. 아! 예술인의 운명은 얼마나 기구한가.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현실은 신 양에게 고통이었다. 학교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영혼을 짓밟았다. 결국 신 양은 세상을 등졌다. 왜 21세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야 하나.
공화국 헌법의 정신
학교를 독립시켜야 한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모든 가정이 다 비참해지지 않는 거다. 당장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유복한 집에서 태어나고 누군가는 비참한 집에서 태어난다. 그러므로 각자 태어난 운명대로 자란다? 절대로 안 된다. 왜?
그건 위헌이다. 공화국은 태어난 운명대로 자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화국은 공교육을 강제해 어느 집에서 태어난 아이든 상관하지 않고 같이 자라게 만든다.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교실을 쓴다. 그것이 공화국의 헌법정신이다.
학교가 사회적 양극화로부터 독립된 별천지가 되는 것이다. 50억 짜리 아파트에 사는 아이든 월세 단칸방에 사는 아이든 학교에 가면 모두 예비 시민으로서 평등하도록. 학교가 그렇게 사회로부터 독립해 작동할 때 그 아이들은 비로소 같은 ‘국민’이 되고 그 결과로서 ‘국가’가 유지되는 것이다.
사회양극화는 이 국가를 쪼개려는 힘이다. 부모들은 이미 쪼개진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자식만이라도, 아이들만이라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것이 공화국의 헌법정신이다.
이명박이 자살학생 만든다
통탄할 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학교를 사회와 통합시키려 한다는 데 있다. 현 정부는 아이들을 부모 재산에 따라 분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고교다양화로 학교 단위에서 자르고, 우열반으로 반 내부에서 또 자르려 한다. 고교입시로 갈린 교복은 아이들에게 공개적 낙인이 될 것이다.
또 일제고사 등 평가체제 강화로 교사들을 채찍질한다. 평가상향의 압력을 받은 교사는 학생들에게 성적올리기 압력을 가하게 되는데, 성적은 곧 사교육비 순서이기 때문에 결국 부잣집 자식이 이쁨받고 없는 집 자식이 차별받는 학교풍경이 도래한다. 또 학교별 자율경영 독립채산제 압력은 옛날 식민지시대처럼, 돈 많이 못 내는 학생들을 천덕꾸러기 취급하게 만든다.
그 결과는 잔혹한 사회양극화를 그대로 빼닮은 잔혹한 학교의 모습이다. 돈을 기준으로 갈리는 냉혹한 구조가 아이들의 영혼, 상처, 감수성 따위를 아랑곳할 리가 없다. 결국 신 양이 선택한 곳은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이었다. 이명박 교육은 ‘저 세상’을 선택할 아이들을 양산할 것이다.
암울하다. 현재로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죽어서야 되겠는가? 살아야 한다. 아니, 살려야 한다. 남은 자들의 몫이다. 다시는 어린 영혼이 상처 받아 죽는 일이 없도록, 죽을 길로 가는 학교를 살려야 한다. 촛불을 끌 수 없는 이유다.
2008년 07월 14일 (월) 14:02:47 하재근 redian@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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