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학년

2005년 3월 4일 금요일 구름이 끼어 있지만 환하고 밝음.

연둣빛 초록(초록샘) 2023. 12. 13. 16:00

2005년 3월 4일 금요일 구름이 끼어 있지만 환하고 밝음.

첫날 공부를 하였다. 부모님들은 어찌나 약속을 잘 지키시는지 교실 안에 단 한분도 안 계셨다. 서둘러 온다고 했으면서 아이들과 오는 시간이 비슷해지고 말았다. 아침 설거지를 하지 말던지, 머리를 감지 말던지, 좀 더 일찍 일어나던지 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찍 일어난 날도 아침 반찬을 더 하던지, 남편이 꾸물대던지 해서 늘 시간에 쫓기게 한다. 늘 동동거리는 것을 보고 식구들은 안 됐다는 표정이다.

아이들은 모둠으로 앉혔던 것을 오늘은 키 순서대로 여자와 남자가 짝이 되도록 앉혔다. 모둠으로 앉히자 "선생님, 왜 이렇게 앉아요?" "왜? 혼자 앉아서 공부하면 심심하잖아. 모여서 공부해야 더 재미있지." 그랬더니 더 묻는 말은 없었다.
아이들마다 가방에서 설문지, 가정환경 조사서, 주민등록 등본을 내어놓으면서 바쁘게 내 앞을 오간다. 아이들이 던져놓다시피한 것을 가지런히 하면서 빠진 아이를 확인해야 하는데 깜빡했다. 내일은 빠진 아이들에게 쪽지 편지 써서 보내야겠다.
모둠이 만들어져서 어제 교실 장식한 입학 축하 풍선 꾸미기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한모둠씩 나와서 재미있는 표정과 어깨동무한 모습을 차례로 찍어주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기분이 좋은가 보다. 장난꾸러기 몇은 익살스럽기 그지없다.

첫 공부는 학교에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일하는 곳이 교무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한 아이가 " 선생님, 저 오줌 마려워요. 근데 화장실이 어디인지 몰라요." 이러는 거다. 아차 싶어서 공부하다 말고 아이들 모두 나오라고 해서 화장실에 갔다. 알려주고 사용법도 말해주었다. 남자아이들 네댓 명이 쪼르르 변기 앞에 가서 시원하게 오줌을 놓고 물을 내리는 것까지 해 보이는 것을 보니 작년 아이들보다 훌쩍 큰 아이들 같다. 물을 꼭 내리라는 말을 몇 번이나 말해주고 추워하는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왔다.

교실에서는 온풍기를 틀기 때문에 잠바를 벗어서 걸상 위에 걸고 그 위에 책가방을 걸었다. 활동하기 편해 보인다.

아이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첫 시간이 끝나자 잠바를 입고 운동장에 가서 놀다 오라고 했다. 환호를 하며 뛰어나가는 아이들과 약속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수민이가 " 선생님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면 안 되지요?" "그럼 이제 1학년이니까" 그 말에 알겠다는 듯이 끄덕이면서 운동장으로 나간다.
조금 뒤에 재원이가 넘어졌다. 그리고 손등도 수민에게 밟힌 모양이다. 울려고 하는데 " 세상에나, 넘어졌는데도 울지 않고 씩씩하게 왔네"라고 하자 울먹임을 멈춘다. 손도 다쳤다고 해서 살펴보니 손에 흙이 많이 묻어서 씻고 오라고 했다. 수건을 내밀어서 손을 닦아주고 있는데 아이들이 들어왔다. 수민이와 화해를 시키고 종소리가 나지 않아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잠바를 단단하게 입히고 우리 학교에서 경사가 가장 가파른 급식실 가는 곳과 도서실 가는 곳에 가서 계단 오르내리기를 두 사람이 손을 잡고 하도록 했다. 아이들 지도하느라 가운데로 걸어갔더니 아이들도 가운데로 걸었다. 그래서 한쪽으로 비켜서서 걸었더니 그대로 한다. 발소리 내지 않고 걸어보자 하니까 정말 소리 내지 않고 잘한다. 공부할 때만 하지 말고 늘 이렇게 했으면 좋으련만 지켜보는 담임이 없으면 엉터리인 녀석이 많다. 모두 예쁘게 잘해서 칭찬을 듬뿍하고 교실로 왔다.

교실에서 원래는 '강아지 똥'을 읽어주려 했는데 책꽂이에 없어서 "팥죽할멈과 호랑이'를 읽어주었다. 주경이가 내용을 알고 앞서 가길래 한번 주의를 주었다. 쉼 없이 이야기하는 주경이에게 "유치원에 가서 더 배우고 올래?" 그랬더니 싫단다. 그래서 "계속 바른 자세 안 하고 선생님 말하는데 떠들면서 딴짓하면 유치원으로 가라고 할 거야? 알겠지?" 그랬더니 알겠다며 잠깐을 조용했다.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느낌을 물으니 재미있단다. 맷돌이 호랑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을 보고 " 정통으로 맞았네"라면서 좋아했다. 내일도 공부 열심히 하면 동화책 읽어준다고 약속하고 서로에게 절하고 헤어졌다. 특기적성 안내장이 나가는데 잘 전하려나 모르겠다. 잠바를 못 잠구는 아이들 네 명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