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라는 작품을 남들이 호들갑을 떨며 이야기를 할 때 오히려 침묵한다. 그들이 모두 잠잠해지고 잊어버린 듯 조용해지면 비로소 읽기 시작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려고. 그들의 말에 귀담아듣지 않는다.
1. 새,2. 밤, 3. 불꽃으로 되어 있다. 글의 비중을 보면 도입에 해당되는 1. 새가 가장 길다. 갈등의 정점에 선 2. 밤을 지나면 선연히 기억나는 사람들이 3. 불꽃의 빛을 뿌린다. 왜 작가가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바랬는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울컥했다.
묘사와 묘사로 이어지는 서사, 사실과 기억과 영상이 뒤섞인 독백, 현재와 과거가 지금 진행형인 상태로 흘러가고 있는 안타까움이 눈발과 바다의 썰물과 밀물이 까만 해변으로 변함없이 날마다 밀어 올리고 쓸어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신문에서 본 오끼나와까지 밀려 흘러온 조선옷 입은 시체들을 거둬 위령제를 해오고 있다는 기사가 인선이 입을 통해 짧게 언급이 되는 것에 소름이 끼쳤다. 첫 장면부터 압도되었다. 묘비 같은 나무와 해안가 무덤이 바닷물에 쓸려 내려가는 것을 혼자서 막아보려 애쓰는 악몽의 근원이 왜 인선이 아니고 경하였는지 의문이 생겼다. 책의 끝에서 다시 돌아가 살펴보면 인선에 대해 모두 알게 된 경하가 악몽을 되풀이해서 꾸는 것이라고 생각됐다.
사실을 깊이 알고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회환, 이해, 진실이 어쩌면 수많은 묘비처럼 마음에 남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일깨움처럼.
가장 놀라운 것은 심리적인 묘사와 촛불에 일렁이는 그림자를 상징처럼 그려넣어 상상 속의 자기 독백인지, 아니면 혼령과의 교감인지, 그도 아니면 눈 속에서 얼어 죽어가면서 환영을 보는 것인지를 넘나들면서 기록이 그 사이사이를 메꾸어 전체적으로 환상적이고 주술적이다.
혼령에 잡혀 피비린내 나는 주검을 숱하게 봐야했던 트라우마가 치료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아직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적폐 세력이 친일파 후손으로, 자본의 핵심으로, 권력의 총아로, 군부의 치세로 보호되고 그들만의 역사로 분칠하고 있는 오늘날까지 '작별'하지 못해서 '작별할 수 없는' 지금은 작가는 작별하겠다가 아닌 잊지 않겠다보다 더 강한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삼십만 명이 넘는 무고한 죽음에 대해 우리 모두가 '작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고 진실이 밝혀지고 죄의 값을 물어야 하고 그들에게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5.18 광주항쟁이 민주화 운동으로 언급이 되고, 작년에서야 겨우 정부가 '제주 4.3 항쟁'에 대해 사과하고 언급하기 시작할 때 나온 작품이라서 작가에게 참으로 고마움을 느낀다. 자료 찾고 글 마무리까지 7년이 걸렸다는데 그도 그럴 것 같다. 당시의 삶을 살아본 사람들의 육성에 힘입어 그들의 분신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고 괴로웠을까가 작품의 서두에 잘 드러나 있다. 그만큼 괴로웠을 진실 앞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풀어낸 우리 역사에 대한 진실을 사랑으로 말하고 있다.
책을 받고 생각지도 않았던 작가의 싸인이 마음 찡하다.
부디 무탈하시길 빌며, 작별하지 않으며 감사를 담아, 2021년 가을에 한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