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치면서 학부모님께 드리는 글
2학년 6반 학부모님들께
오늘 저녁 늦게서야 올해 마지막 신문인 16호 학급신문을 인쇄하고 돌아오는 길이 내내 미묘한 심정이었습니다. 이제서야 한 해가 끝났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아쉬움이 진뜩하게 묻어 있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소통을 제대로 하려고 만든 학급신문이건만 나 혼자 부르는 짝사랑의 노래가 된 것 같아서 이거 잘하는 짓인가 하는 회의를 몇 번씩이나 했답니다. 하지만 약속은 한 거니까, 교육은 그렇게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까, 효과가 담박에 드러나는 일은 마음 키우는 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인데 너무 욕심이 과한 거다 라고 스스로 질책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 신문은 사연이 많습니다. 학교에서 칼러 프린트가 비싼데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칼러가 얼마나 비싼지 4가지 바꾸는데 2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반 때문에 여러 번 바꿨습니다. 그런데 그 칼러 프린트가 이제 낡아서 줄이 가는 거예요. 속이 상했지만 그 조차 할 수 없다고 해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해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신문 사진 상태가 좋지 않은 점에 대해 많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아이들 방학 때에는 학원보다는 학교도서관이나 마을 도서관에 보내서 오전에는 책을 읽으며 아이들 마음을 키워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책읽어주세요 목록 책은 가능하면 다 읽고 3학년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방학 계획표에 그렇게 짜라고 일렀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대부분 방학이라고 부모님들이 학원 더 늘려서 다니게 되어 힘이 든다고 다들 한숨을 쉬고 있어요. 이제 9살짜리들이.
그래서 부탁 드립니다. 선수 학습 시키면 아이들이 정말 학교 수업에 재미없어 합니다. 집중 안하고 딴짓하고 그러다가 야단 맞고 이런 것이 되풀이 되면 그만 학교 오는 것도 싫어지지요. 그런데 선수학습을 다 알고 있느냐하면 그렇지가 않거든요. 개념이 이해가 안되는 수학은 아무리 해도 어렴풋 한거지 정말 안 것은 아니거든요. 괜히 친구들 얕잡아 보는 나쁜 버릇도 생기고 잘난 척하고 싶어하니까 친구들이 꺼리고 이런 상황이 되곤합니다.
3학년에 영어가 들어오니까 걱정스럽겠지만, 공부는 아이가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자발적인 것이 가능하고, 그래야 길게 효과적인 자기 학습이 가능합니다. 강제로 억지로는 내후년까지는 가능할런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 마음 속에는 반감만 커지고 그래서 문제를 일으키곤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나는 식물과 같습니다. 너무 보호해도 약하고, 잘 잡아주지 않으면 휘어지고 비뚤어지기 쉽지요.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부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재미있고 흥미로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잘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그 아이가 즐기면서 열심히 자신의 특성을 발현할 수 있을테니까요. 아이들은 정말 많이 변합니다. 그러니 가능성을 믿어주시고 격려해주시면서 방학 내내 책읽기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소망처럼 잘 클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 인사와 더불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기 위해 편지를 시작했는데, 또 특유의 잔소리가 많았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말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보호 받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꾸 격려하고 자신감을 성취하는 일을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책읽기는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작은 성취감이 쌓여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림책 한 권이 주는 감동이 아이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말이지요.
올해 반성은 매일같이 책을 읽어주지 못했습니다. 에이 그렇지 뭐 하고 실망하신 분들께 거듭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남은 2월에 더 재미있는 학교 생활이 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새해에는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해서 힘차게 살아나가야겠지요.
진심으로 올 한해 알게 모르게 도와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표나지 않게 생색나지 않게 해주신 그 정성이 우리 아이들을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이도 많고 고집도 세고 그래서 다가서기 쉽지 않았던 선생에게 많이 서운하셨던 점이 있으시면 너그럽게 품어주시기 바랍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아이들 모두, 그리고 학부모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좀 더 행복한 한 해가 되시길 빌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마움과 감사함에 엎드려 절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