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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위원장님, '유인촌 장관'일 때 결단하십시오

연둣빛 초록(초록샘) 2010. 7. 14. 13:45

조 위원장님, '유인촌 장관'일 때 결단하십시오
[편지] '독립영화 죽이기' 영화발전기금 예산, 부끄러운줄 아세요
10.07.14 10:11 ㅣ최종 업데이트 10.07.14 10:11 하성태 (woodyh)

"정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나? 그래도 실직 후 걱정은 하지 마라. 차기 내 작품에 출연을 보장해 주겠다. 그간 재임 시 보여준 실제 같은 연기에 매우 감탄했다. 내 영화에서 만큼은 신인배우로 꼭 뜨게 해 주겠다."

 

조희문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님, 익명을 요구한 한 감독은 위원장님께 이렇게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간 영화인들과 기자들 앞에서 보여준 뻔뻔함과 국회의원들 앞에서의 가식적인 모습, 그 상반된 얼굴이 그 감독의 심금을 울렸던 것 같더라고요.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
ⓒ 성하훈
조희문

지금도 불철주야 영화계의 소통과 균형을 위해 일하고 있을 위원장님께 이리 무례하게 시작하는 글을 드리는 이유는 몇 가지 질문이 있어서 입니다.

 

지난달 22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 회의장에서 위원장님은 국회의원들의 호통과 질타를 받아도 그저 미진하고 부족했을 뿐, "잘못했다"는 말은 일언반구 없으시더라고요.

 

그 당당함에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무엇보다 소리 소문 없이 지난 6월 28일 '2011년 영화발전기금 운용안'이 의결되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를 거쳐 기획재정부까지 올라간 상태더군요. 지금쯤은 아마 크게 한 숨을 돌려도 몇 번은 돌리셨겠네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내년 예산안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처리하는데 성공하신 기분은 어떠신가요? 탁 터놓고, 그래서 위원장직은 언제 내놓으실 건가요?

 

독립영화 죽이는 지원사업 폐지, 누구 발상입니까?

 

칼자루 쥔 놈 마음대로 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지만, 그 칼 한번 무자비하게 휘두르셨더군요. 하긴, 지난 3월 총 1681명이라는 영화계 초유의 인원이 서명한 '영화진흥위원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영화인 선언'에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으셨던 분이니 짐작은 했지만요. 

 

한 눈에 봐도 운용안은 기존 독립영화 진영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려는 약자 죽이기로 밖에 보이지 않더군요. 독립영화 지원사업, 예술영화 지원사업, 기획개발역량강화 사업을 모두 폐지했으니까요. 참, 통 크다는 말 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간 한국영화 '다양성'의 근간이 되어줬던 종자돈을 모두 빼앗아 버리겠다는 발상이라니요. 세 사업 모두 전년도만 해도 증액되거나 기존 예산을 유지했던 사업이었단 말이지요.

 

그간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을 통해 완성되고, 또 관객과 만날 수 있던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알고는 계신가요? 분명 알고 계실 텐데, 그 작품들 모두 영화계를 접수한 '좌파' 감독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기획개발 사업비 또한 그래요. 몇 년 전부터 가뜩이나 영화계가 어려워지면서 기획, 개발 영역이 투자에서 제외되고 있는데, 기존 지원을 없앤다니요. 위원장님 본인이 학교에서 공부만 했다고 해서, 아이디어를 다듬고 시나리오를 완성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몰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를 대신해 장비나 후반작업을 지원하겠다고요? 또 제작사에 인건비를 보조하겠다고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세요. 필름값과 스태프들의 인건비, 시나리오 쓰는 데 주었던 기존 지원비는 삭감해놓고, 후반 작업만 도와주면 영화 한 편이 하늘에서 뚝 떨어집니까? 또 인건비를 기업차원에서 지원한다고 해서, 부족한 제작비를 제일 먼저 스태프 인건비에서 벌충해 왔던 기존 제작사들이 하루아침에 투명하게 변할까요?

 

'정권에 도움이 안 되는'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미디액트 스태프들과 수강생들이 만든 피켓들이 복도에 놓여있다.
ⓒ 권지은
미디액트

"조 위원장은 영화계에서도 불만이 많고, 질의를 해 보니 조직운영에 개념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분은 이 정권에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이용경 창조한국당 의원이 문방위에서 유인촌 장관에게 한 말입니다. 요약하자면, 개념도 없고, 철저한 MB맨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처럼 들리더군요. 어쩌다 그런 평가를 다 받으십니까. 그렇게나 '좌파 척결'과 '잃어버린 10년'을 강조하던 분이요. 심지어 천정배 의원에게는 영진위 기자재를 빼돌린 적 있느냐는 추궁을 당하면서 쩔쩔 매시더군요.

 

"다양성이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대해 지지 선언을 하겠다는데 그 자체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 2008년 3월25일자 <동아일보> '영화인이 우려하는 '영화계 정치 바람'' 중

 

"참여정부가 문화를 통한 사회적 변혁을 과도하게 인식해 문화를 선전·선동 수단으로 변질시켰다. 이를 제자리로 돌려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 2008년 1월10일자 <위클리경향> '학계·문화계·시민사회계 신보수 바람 거세다' 중

 

"새 정부의 문화정책은 이념과 선전에 동원된 문화·예술을 본래의 자리로 돌려놓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바탕 위에서 정부 역할과 민간영역에 대한 분리 접근이 필요하다." - 2008년 2월1일자 <데일리안> '"이명박 정부의 문화적 지향은 무엇인가?"' 중

 

네, 모두 위원장님 자신이 뱉은 말들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그리고 유인촌 문광부 장관이 재임하기 전부터 참 많은 말들을 하셨더군요. 당시 유인촌 내정자가 문화계에서 받아들일 만한 인물이며, 문화계에도 시장과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고요. 그렇게 '아부'해서 얻은 자리이니 계속 지키고 싶으시겠지요.

 

그랬다면 본인말대로 제대로 '균형'을 잡으셨어야죠. 그 균형이란 게 장원재, 최공재 등 자기 사람들로 우글대는 시민영상문화기구와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에게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를 쥐어주는 거였나 보죠. 그래서 이번 예산안에 독립영화 관람료 지원 부분을 신설해서 관객들이 보이콧하는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의 운영비를 챙겨주려 하는 건가요?

 

독립영화전용관과 인디스페이스, 영상미디어센터와 미디액트, 시네마테크와 서울아트시네마는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영화계의 발전을 아래로부터 이끌어 온 현존하는 역사입니다. 배우신 분이라, 교수님이라 더 잘 알겠지만, 영화라는 예술 앞에 좌우, 이념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는 게 아닙니다. 그도 아니라면 자기 사람들 심어 놓고 앞으로 또 10년은 영화계에서 호가호위하고 싶었다고 고백이라도 하길 바랍니다.

 

조희문 위원장, 아름다운 퇴장을 보여달라

 

자, 이제 대답하실 때가 됐습니다. 지난 문방위에서도 천정배 의원을 비롯해 여러 의원들이 사퇴를 촉구했지요. 물론 유인촌 장관이나 신재민 차관은 "법적인 문제도 남아 있고 절차대로 하겠다"며 감싸주더군요. 그때 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며칠 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 의결이 남아있다는 것을요.

 

대표적으로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 공모 파행 등 위원장님의 영진위의 사유화와 탈법, 위법을 두고 인디포럼과 미디액트 등 영화단체가 소송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굴욕을 감수하지 마시고 어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시길 정중히 제안하는 바입니다.

 

그렇게 법과 절차 들먹이면서 위원장님을 감싸주던 문화부 장·차관의 거취도 이번 내각으로 인해 불확실한 상태입니다. 훗날 '윗선'을 탓하며 양심고백이라도 하려면, (지금도 늦었지만)적절한 시기의 퇴장은 필수입니다. 그래야만 내년도 영화발전기금 예산안을 재심사할 여지라도 생깁니다. 그것이야말로 벼랑 끝에 몰린 위원장님도 살고, 영화계도 사는 길입니다.

 

"'직접지원제도'를 없애겠다고? 귀와 입을 먼저 열어라"

인디포럼 상임의장 이송희일 감독이 보내온 '편지'

 

  
이송희일 감독.
ⓒ 하성태
이송희일

영진위의 예술-독립영화 직접 지원은 한국 영화 다양성을 위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왔고, 국제적으로도 부러움을 사고 있던 제도다. 직접 지원 제도를 통해 그 동안 많은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들이 제작되었고, 한국 영화를 활성화하는 데 이바지했던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헌데 이런 제도를 문화부에서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로밖에는 안 보인다. 문화부는 부당 압력과 파행적 심사를 거듭하고 있던 조희문 하나 사퇴시켜내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력을 '밥그릇 싸움'으로 돌려놓고 직접 제도를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조희문을 자르면 될 일을, 그것하나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주제에, 문제가 있으나 직접 지원 제도를 없애자는 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직접 지원 제도가 문제가 많다고? 자, 그럼 첫 번째 문제의 발단을 제공한 조희문을 사퇴시켜라. 두 번째, 영화인들과 공청회를 열든지 해서 논의 구조를 만들어라. 귀와 입을 다 닫은 채 그 동안 영화계의 목소리를 일관되게 무시하다가 이제와 말 많은 직접 지원 제도를 없애자고 말하는 당신들이 제대로 된 사유 능력을 갖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당신들의 엉터리 논리 구조에 의하면 이번 정권 들어 이렇게 문제 많고 탈 많은 문광부였지 않은가? 없애라. 아니면 당신들 월급을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