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교장 권한 강화 ‘교사 길들이기?’
[사회]학교장 권한 강화 ‘교사 길들이기?’
2010 03/09ㅣ위클리경향 865호
ㆍ비정기 인사 결정권 확대… 강제·부당 전보 불거져
앞으로 교장의 학교운영 방침에 문제가 있다고 교사가 지적하면 다른 학교로 옮길 것을 각오해야 할지도 모른다. 교장 권한 강화로 학교장이 마음만 먹으면 조례에 규정된 전보 기간이 아니라도 ‘특별 전보’ 형식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를 다른 학교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2월 25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전교조 서울지부 및 사회공공성연대회의 등 단체가 ‘총체적 교육비리·파행 규탄 및 김경회 (교육감) 직무대행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최영진 기자
지난 2월 12일 서울시교육청은 중등교사 3947명에 대한 정기 전보인사(3월 1일자) 명단을 발표했다. 교육청의 이번 인사에서 학교장의 ‘경영상 판단’에 따라 비정기 전보되는 교사가 17명 포함됐다. 과거에는 비리나 근무평정 점수 등의 이유로 1년에 한두 명의 교사가 학교를 옮겼지만 이번처럼 17명이 강제로 전보되는 경우는 처음이다. 이번에 강제 전보된 교사 가운데에는 전교조 교사도 많이 포함돼 있어 ‘전교조 죽이기’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던 전교조 조합원 강 모 교사는 1년 만에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로 강제 전보 당했다. 지난해 12월에 개정된 서울시교육청 인사조례에 따르면 정기 전보 대상 교사는 ‘3년 이상 근무’(예전에는 ‘5년 근무’)로 정하고 있다. 강 교사는 1년 만에 구로구의 고등학교로 전보 조치한 이유는 교장의 ‘특별 전보’ 때문이다. 강 교사는 “예전에는 교장들이 특별 전보 권한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특별 전보는 문제가 불거질 소지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런데 정권이 바뀌면서 학교장들이 ‘때는 이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학교운영 문제 제기한 교사 ‘특별전보’
강 교사는 서초구의 한 고등학교에 재직하는 동안 학교운영 방식을 두고 교장과 많은 논쟁을 벌였다. 강 교사는 학교장과 학교 구내매점 운영건으로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장은 매점주와 수의계약을 맺었고, 주변 학교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비를 받았다. 이에 강 교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강 교사는 매점 계약을 수의계약으로 한 것이 잘못됐다는 서류를 확보했고, 교장은 이에 매점 계약을 공개 경쟁으로 바꿨다. 강 교사는 수의계약을 맺기 위해 서류를 조작한 행정실장 교체를 요구했고, 교장은 그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강 교사는 학교장이 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채 추진한 ▲교과 교실제 ▲과학 중점 학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교장과 강 교사의 사이는 틀어졌다. 강 교사는 “지난해 11월부터 학교장은 나에게 여러가지 이유를 들면서 다른 학교로 가라고 했다. 심지어 한겨레나 경향신문 칼럼을 이용한 시험 문제 제출을 문제 삼기도 했다”면서 “교장에게 어떤 이유로 전보 조치 됐는지 서류를 보여 달라고 했지만 끝까지 보여 주지 않았다. 전보 서류 작성도 나 대신 교감이 대신 써서 제출할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강 교사는 2월 23일 구로구에 있는 학교로 짐을 옮겼다. 그러나 이번 전보 조치의 부당성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하고 행정소송도 할 예정이다. 강 교사는 “교장에게 잘못 보이면 강제 전보를 당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기 싫기 때문”이라면서 “원래 학교로 돌아가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대답했다.
강제 전보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학교로 전보를 가야만 하는 전교조 조합원 교사도 많다. 박 모 교사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동대문구의 한 고등학교로 전보 조치 당했다. 마포구에 살고 있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있는 전·출입 상황을 보고 집에서 가까운 고등학교 8개를 골라 지망했다. 1지망한 고등학교는 세 자리가 빈 상태였고, 학교장이 교사를 초빙도 하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발표 결과 박 교사는 8지망에도 없는 학교로 발령 났다. 전교조 조합원 최 모 교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최 교사는 자신이 희망한 학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여고로 전보를 당했다.
교장 말 잘 안듣는‘전교조’ 죽이기
전교조 서울시지부가 파악한 내용에 따르면 자신이 희망한 8개 학교로 발령이 나지 않은 전교조 조합원 교사들이 다수 있다. 이번에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로 강제 전보를 당한 심 모 교사는 “전교조 활동 때문에 징계를 받았다는 이유로 원래 가고 싶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강제 전보를 당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한 후배 교사는 학교장이 일제고사 때문에 징계를 받은 교사에게 ‘조용히 있으면 선처해 주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 줬다. 강제 전보를 당하지 않으려면 교장의 말을 잘 들으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학교 자율화’가 강조되기 시작했고, 이와 더불어 학교장의 권한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학교장 권한 확대를 통해 불거진 강제·부당 전보 문제는 ‘전교조 죽이기’와 함께 ‘교사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많다.
김재석 전교조 서울시지부 조직국장은 “올해 서울시 교육청 전보인사 원칙이 변경되면서 교장 권한이 더욱 확대됐다”면서 “학교장이 교사 정원의 20%까지 초빙할 수 있는 초빙교사제가 신설됐고, 전입을 요청할 수 있는 범위도 10%에서 20%로 확대됐다.(초등학교의 경우 전입 요청이 20%에서 30%로 확대) 전보유예도 전보 대상 교사의 20%에서 30%로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학교장이 교사 정원의 최대 70%까지 결정할 수 있는 셈이다. 학교장과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교사는 언제든지 ‘특별 전보’ 대상이 돼 원하지 않는 학교로 떠나야만 하는 상황인 것.
학교장의 잘못에도 일선 교사들은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김 조직국장은 “학교장이 원하는 교사를 데려오거나 전보 유예하기 위해 ‘교과서 집필자’ ‘생활지도부장’ 등 특정인을 위한 초빙 조건을 만들기도 했다”면서 “초빙교사제가 도입되고, 전보 유예 및 전입 요청 확대로 정기전보 대상자의 순환 전보제가 붕괴됨으로써 다수 교사가 전혀 희망하지 않은 학교로 전보되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최홍이 서울시교육청 교육위원은 “교원 전보가 아주 개악이 됐고, 교단을 완전히 황폐화시켰다”면서 “학교장은 비정기 전보와 교원평가를 함께 사용해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를 구조조정으로 밀어 넣을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중등교사 비정기 전보 인사에 대해 “학교자율화 조치에 따라 학교장 권한이 강화됐고, 능력이 부족한 교사 등은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전보 조치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학교장의 의지에 따라 교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보 조치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