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해직 교사들의 최후 진술
"어쩔 수 없이 천생 선생이라는 사실..."
[최후진술문] 전 길동초등학교 최혜원 교사
09.12.18 21:04 ㅣ최종 업데이트 09.12.18 21:04 오마이뉴스 (news)
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 최혜원 교사 ⓒ 권우성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해직 당시에 발령받은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새내기 교사였습니다. 비록 경력이 짧아 다듬어지지 않은 면이 있을지언정, 열정 하나만큼은 다른 누구에게 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발령 나던 첫 해 3월의 첫날 마주한 저만을 쳐다보던 수십 개의 눈동자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담임 편지를 보내 학급 소식을 전하고 학부모와 소통하려고 노력했고, 또 노는 토요일이면 교과 과정과 연계하여 아이들, 학부모님들과 함께 학교 바깥으로 체험학습을 다녀왔습니다.
아이들 글 하나 하나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직접 학급문집을 만들어 나누어주었고, 밤늦도록 노트 몇 권을 꽉 채울 만큼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습니다. 혹여나 공부가 모자라 가르침에 부족함이 있을까 싶어 글쓰기, 연극, 책 읽기 모임에 다니며 열심히 배우기도 했습니다.
이런 제 노력을 지켜본 학부모님들도 하나둘씩 저를 믿어주기 시작했고, 아이들 또한 마음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열심히 교사로서 살아가는 것이 제 인생의 행복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제 목표이자 꿈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열정 있던 저에게, 떠나라니요
그러나 저는 교실에서만큼은 이렇게 행복했을지언정 교실 밖에서는 너무나 불행했습니다. 이런 새내기 교사의 열정어린 교육활동을 격려하고 지원해주기는커녕 자신들의 승진에 문제가 생길까봐 염려하기에 급급했던 관리자들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부장교사들을 불러 잘 좀 길들여보라며 "최 선생, 적당히 해. 적당히만 하면 힘들 것 없잖아"하며 막아서기 바빴던 그들이 저에게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교직에서 떠나랍니다. 그 누구보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에게 성실하려고 노력해온 저로서는, 과연 국가와 관리자에 대한 성실이 진정 교사로서의 성실인지 묻고 싶습니다.
일제고사 보던 날, 체험학습 떠난 아이들에게 교장선생님께서는 직접 전화를 걸어 '동생이 몇 살이냐?', '동생도 이 학교 올 것 아니냐', '학교 전체에서 당신 아이만 시험을 안 봤다', '시험을 보든 안 보든 아이를 교장실로 부를 것이다', '시험 안 보는 것은 군대 안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학부모님들께 이야기했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진술서에 정중하게 설득했다고 쓰셨던 이 통화가 학부모님들께는 협박과 강요였습니다.
심지어는 밤늦은 시간에 집까지 찾아가 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미 전날 전화 통화로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의지를 확인했는데도 마치 학부모들이 '다 가는 줄 알고 그냥 보냈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정말 저에게 속아서 체험학습에 참여한 것이라면 학부모님들이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내용의 진술서를 쓸 수 있었을까요?
정책 지키기 위해 교사와 아이들을 떼놓으실 겁니까
▲ 지난 3월 11일, 최혜원 교사가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해직교사 원상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며 거리행진을 하려하자 경찰들이 막고 있다. ⓒ 유성호
교과부와 교육청은 아이들의 교육권을 짓밟았다며 졸업을 두 달 남긴 6학년 아이들의 담임을 강제로 교실에서 끌어냈습니다. 이미 1년 다 되어가는 시간을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 한 담임교사와 아이들을 강제로 떼어냈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교실 문을 바깥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온 학교의 문을 다 잠갔습니다. 방화 셔터까지 내리고 학교 기사님을 시켜 아이들을 감시하게 했습니다. 선생님 돌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유리문에 매달리는 아이들을 떼놓기 위해 경찰을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과연 아이들의 교육권을 짓밟은 것은 누구입니까?
벌써 해직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아이들의 울음소리, 담임으로 서지 못한 졸업식의 풍경을 생각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저보고 선생님 언제 학교로 돌아 오냐고, 교복 입고 교실로 놀러가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1년 동안 진정 깨달은 것이 있다면, 저는 어쩔 수 없이 천생 선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직해서 다시 아이들 앞에 서고 싶습니다. 제가 앞으로 만나서 더 사랑해주어야 할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이미 파행임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는 국가의 교육 정책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교사들을 교직에서 몰아내야만 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9 OhmyNews
"20년 전 해직 이어 두 번째 해직"
[최후진술문] 전 광양중학교 윤여강 교사
09.12.18 21:05 ㅣ최종 업데이트 09.12.18 21:05 오마이뉴스 (news)
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 윤여강 교사 ⓒ 유성호
존경하는 재판장님께.
저는 지난 1983년 처음 교직에 나와 중학교에서 국사를 가르쳤습니다.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 때 탈퇴하지 않아 해직되었고 현재도 전교조 조합원입니다.
대부분 교사들이 학창시절에 모범생이었듯이 저 또한 모범생이었지만 꿈도 없고 자존감도 부족한 학생이었고 교사가 된 것 또한 좋은 직업이라서 택해 운 좋게 되었을 뿐 '어떤 교사가 되겠다'는 꿈도 다짐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기만 한 교사였던 저는 다행히 지금의 전교조를 있게 한 좋은 동료 교사들을 만나 조금씩 교사의 삶을 배울 수 있었으며 이런 제 변화를 통해 저처럼 겉으로는 순종적이고 착한 모습에 감춰진 아이들의 고민과 억눌린 자아를 일깨워주고 진정한 자신을 찾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제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옳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 무조건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어떤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그 일에 관계있는 사람들이 서로 충분히 얘기해서 결정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듯이 정부에서 진행하는 정책 또한 해당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교사임을 밝혀주십시오
국가의 경쟁력은 인재양성에 있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한다고 모두들 얘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로 창의적 교육이 이루어지려면 '문제풀이'나 '줄세우기'식의 일제고사를 강제로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들 모두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무한한 잠재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되도록 풍토와 여건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공무원이라는 신분과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책무성에 대해 고민한 끝에 제가 선택한 행동은 일제고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과 체험학습 안내 정도의 소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행동에도 불이익이 있을 수 있으며, 감수하고자 했지만 파면이라는 징계를 받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 행동들이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관리자들의 입장에서 거슬리고 일제고사를 강행하고자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될지 모르지만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성적을 조작하거나 비위를 저지른 행동이 아니고 교사로서 교육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다하지 않은, 누가 보기에도 해서는 안 될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게 적용된 법령 위반의 내용이나 징계과정을 보고 겪으면서 같은 교육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 아이들 앞에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인간적인 정리나 최소한의 상식이나 아이들의 눈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교사의 소신이나 양심은 가져서는 안 될 잘못된 것으로조차 여기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은 말이나 수업보다 교사의 모습을 통해 많은 걸 배우는데 말입니다.
법을 지키고자 했고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로 살고자 했던 저희들의 행동이 결코 헛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님을 판결을 통해 밝혀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들은 '내일'이 아닌, 지금 여기 존재합니다
교육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들의 인격이 형성될 때 자발성과 자기통제능력이 함께 발달해야 자주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주성이란 자기 스스로 생각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동하는 힘이라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진정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부족하나마 저 또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의 제 삶에 다시 주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치하에서 자기 손으로 길렀던 아이들을 도저히 버릴 수 없었고 죽는 순간까지 아이들이 자신을 신뢰하며, 인간의 선을 믿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게 하고 싶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가스실로 가는 열차에 올랐던 야누슈 코르착이란 분이 쓰신 글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은 미래를 살 사람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들을 대할 때는 진지하게, 부드러움과 존경을 담아야 합니다.
그들이 성장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건 간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의 내면에 있는 '미지의 사람'은 우리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이들은 '언젠가는' '지금이 아닌 내일'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이는 내일의 희망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금, 여기 이미 존재합니다.
ⓒ 2009 OhmyNews
"아이들의 소란스러움 마저 소중해졌습니다"
[최후진술문] 전 거원초등학교 박수영 교사
09.12.18 21:05 ㅣ최종 업데이트 09.12.18 21:06 오마이뉴스 (news)
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왼쪽) ⓒ 유성호
이번 해임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며 새롭게 교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해임된 학교는 살고 있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입니다. 매일 아침이 되면 학교로 등교하는 아이들의 소란스러움을 듣게 되지요.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다보면 가끔은 그 소란스러움이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란스러움 마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해주며 저에게 교직이 어떤 의미였었나를 생각하게 해 준 것입니다.
교육을 논할 때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이들입니다.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해보다 안 되면 그만이지, 또는 분명히 그 폐해가 명백한 것임에도 소수의 이익을 위해 강행하는 것이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의 몫이 되어야 합니다.
그중 일제고사는 과거 우리 교육을 황폐화 시키고 아이들의 창의성과 개성을 무시한 채 시험에만 매몰되어 성적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폐지 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그 일제고사에 허덕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적 비관으로 초등학생에서부터 고등학생까지 그 나이를 불문하고 자신의 꿈을 한 번 펼쳐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만 수많은 아이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했던 그 시절을 말입니다.
검증 안 된 정책 차단은 교사의 임무
저는 교사가 된 이후 진정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10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아이들과의 만남 하나 하나는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그리 대단한 권력을 가지고 있거나 뭔가 특별한 존재로서 자리 지워지지 않습니다. 교사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를 떠나 아이들 하나 하나의 인격을 어루만지고 그 삶을 이해하며 함께 삶을 나누는 존재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언제나 예민한 촉수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떤 행위 하나가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혹시 그 아이를 아프게 하지나 않을 것인지, 그 아이의 앞으로의 삶에 어떤 긍정성 또는 부정성을 가지게 될 것인지 끊임없는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교사입니다.
하물며 검증되지 않는 정책 사안이 우리 아이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때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솔직히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한해를 마무리 하고 있어야 할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로 너무 참담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해임된 가장 중요한 사유 중 하나가 학부모와 학생의 일제고사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인정한 것인데, 일제고사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고 사회적 합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되면서 가장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학생과 학부모입니다.
물론 교과부와 교육청은 일제고사 시행이 아이들의 성취도에 대한 측정과 보정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고사가 시행된 후 학생들에게 결과가 통보된 것은 12월이고 그에 따른 교육청의 약속은 하나도 이행된 것이 없습니다. 다만 언론을 통해 지역별 비교를 통해 지역별, 학교별 서열을 공개된 것이 전부지요.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국가 책무 아닌가요
▲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박수영 교사는 지난해 12월 24일, 학교 안이 아닌 학교 밖에서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과 방학식을 했다. ⓒ 남소연
앞서 선생님들이 작년 일제고사 이후 불거진 학교별 파행을 말씀 하셨기에 그 처참함을 다시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물론 저는 전국단위학업성취도평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수준에서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결과를 수집하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입니다. 그러나 전수방식이라면 다른 얘기가 됩니다.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데이터 수집의 목적은 전수방식이 아닌 표집방식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트럭에 가득 실려 있는 사과의 맛을 확인하기 위해서 전체 사과의 맛이 아닌 일부 샘플링을 통해 확인하면 되듯이 표집방식으로 성취도를 측정하고 그 대안 마련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수 방식이 되면 반드시 전국적 서열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취도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변인은 부모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라는 연구 결과가 교육학에서 상식입니다. 그것은 부모의 경제력에 의해 사회적, 문화적 경험이 좌우되고 학습에 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책무는 이런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여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생활을 하게 해주는 것이지 시험을 통해 끊임없이 자존감을 해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시험문제 유형에 익숙해지고 시험문제 풀이 기계가 되는 것이 학력과는 무관하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사법정의 실현되길
마지막으로 교사는 교육에 대한 전문가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교사 맘대로 교육활동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사는 교육법과 교육과정에 위배 되지 않는 범위에서 교육에 대한 자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책입안자들의 자의적인 결정과 법 해석에 의해 그저 침묵하고 굴종해야 한다면 교사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라 행정공무원이 되고 말 것입니다.
변론과정에서 본인의 행위가 교육과정과 법률에 위배되지 않았음을 충분히 밝혔기에 아이들과 더불어 인격적인 만남과 삶을 나누며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도록 사법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재판장에서 얘기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몰라 말이 길어졌습니다. 우리 교육 현실에서 보다 행복한 교육 환경을 마련하는데 무엇이 우선해야 하는지 그리고 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너무나 자명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소중한 삶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행해지는 정책들에 대해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합의를 말하는 교사가 문제 교사인지, 그리고 그로인해 학교 밖으로 쫓겨나야 되는지에 대한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 2009 OhmyNews
"제 행위 후회 없지만, 아이들이 걱정"
[최후진술문] 전 유현초등학교 설은주 교사
09.12.18 21:06 ㅣ최종 업데이트 09.12.18 21:06 오마이뉴스 (news)
지난 17일 7명(송용운·정상용·윤여강·김윤주·박수영·설은주·최혜원)의 선생님이 서울행정법원 법정에 섰습니다. 꼭 1년 전 이날 이 선생님들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해임통보서를 받았습니다.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린 게 징계 사유였습니다. 7명의 선생님은 지난 5월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냈고, 17일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2명의 선생님은 구두로, 5명의 선생님은 최후진술문을 낭독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결과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2009년 마지막 날인 31일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사전에 양해를 얻은 4명의 선생님의 최후진술문 전문을 싣습니다. 아이들 품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염원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편집자말>
▲ 설은주 교사. ⓒ 권우성
재판장님.
돌이켜보면 작년 10월 일제고사 때 저의 행위는 '무엇이 교육인가'에 대한 고민의 연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비교사였던 대학시절, 3년여 공부방에서 미아리텍사스촌 아이들을 가르쳤던 적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다가도 공부방에만 오면 여느 아이들처럼 신나게 떠들고 자기 표현하는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고민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교단에 나와 아이들과 함께 한 7년, 수업시간 제가 마주했던 6학년 아이들의 얼굴은 배움의 기쁨으로 빛나기보다, 전날 밤늦게까지 이어진 학원공부와 문제풀이 수업에 이미 지치고 지루해하는 표정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교사는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하고, 학교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할까요? 그간의 경험은 저에게 '교육이란 자기 스스로를 긍정하게 하고, 순수한 배움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학교는 그러한 교육이 차별 없이 마음껏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아이들이 안심하고 배울 수 있게 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가 역시 이와 같은 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초등학생을 밤 10시까지 공부시키는 학교가 생겼습니다
어떤 학생이라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교사의 노력이 있은 후에,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할 부분이 평가입니다. 평가 결과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인정하되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더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력하여 앎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평가의 목적입니다.
교사로서 그동안 가져왔던 교육에 대한 고민 속에서, 갑자기 닥친 일제고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당혹스럽고 우려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그토록 우려스러웠는지는, 작년 일제고사가 처음 실시되고 지금까지 벌어진 학교현장의 참담한 뉴스들을 보셨다면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초등학생인데 밤 10시까지 문제풀이 공부를 시키는 학교가 생겼습니다. 시험을 잘 본 아이들에게 어떤 교장 선생님은 직접 교장실에서 용돈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반면 학교평균을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특수반 입급과 전학을 강요당해야 했습니다. 너무나 슬프게도 이 아이들 대부분은 집도 가난한 아이들입니다.
교육부는 일제고사 실시로 부진아를 가려내 보정지도와 맞춤개별화 교육을 하겠다고 했지만, 학교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상은 이러합니다. 관리 감독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무한경쟁을 유발시키는 일제고사, 그 자체가 가진 문제입니다.
평범한 교사로 아이들 곁에서 늙고 싶습니다
재판장님.
일제고사에 대한 그동안의 고민들은 교사로서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구의 명령이나 지침이 아닌, 매일을 아이들 앞에 서야 하는 교사로서의 소신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제 행위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저의 해직으로 인해 많이 걱정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년 우리반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일제고사 응시여부를 선택하는 것을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일제식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수학경시대회도 개인의 선택에 의해 응시여부가 정해졌기에, 갑자기 시행되는 전국일제고사에 자신들이 선택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 '일제고사'때 학생들의 야외체험학습을 허락한 뒤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해임통보를 받은 설은주 교사가 근무하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 유현초등학교 모습. ⓒ 권우성
하지만 겨울방학을 일주일 앞두고, 이 일로 담임교사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아야 했던 아이들은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뇌물을 받아 사리사욕을 취한 것도 아니고 성적을 조작한 것도 아닌데, 단지 정부시책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벌어진 참담한 광경을 목도한 우리 아이들이 학교와 사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지금 비록 학교 밖에 있지만 아이들 걱정이 많이 됩니다.
'우리들 때문에 선생님이 떠나시게 됐습니다. 아니, 세상이 우리들과 선생님을 갈라놓았습니다'라고 쓴 우리반 영호의 글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메일 뿐입니다.
재판장님.
지금도 아이들은 찾아와서 선생님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묻곤 합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만 하던 우리 선생님이 무얼 해서 밥을 먹고 사는지, 그게 가장 걱정이 되나 봅니다. 그런 아이들이 반가워 제가 사주는 한끼 밥도 선생님께 부담이 될까 걱정스러워 하는 어른스런 아이들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마음처럼, 제가 제일 잘 할 수 있고, 행복해 하는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여기 해직된 일곱 선생님들 모두가 마찬가지실 것입니다. 평생을 교단에서 평범한 교사로 아이들 곁에서 늙겠다고 다짐했던 첫 발령 때의 약속을 지킬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상 진술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