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처럼 조각난 덴마크 ‘제3의 길’
파편처럼 조각난 덴마크 ‘제3의 길’ | ||||||||
경제위기와 함께 시험대 오른 덴마크 모델 사회 단결을 구실로 공공연한 외국인 차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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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민이 의문을 품고 있다. 저 유명한 ‘유연적 안정성’ 정책은 서서히 유연성에만 치중하고 안정성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경제위기가 닥쳐오면서 평등에 관한 전후 합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극우파는 이민자 제한 정책, 특히 사회 분야에서의 제한적 조치들에 압력을 가하고, 세금 인하를 요구하는 중산층은 최빈 계급을 위해 돈을 내길 꺼린다. 게다가 그토록 칭찬이 자자하던 어제의 ‘북유럽 모델’ 또한 직접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다른 유럽 국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덴마크의 관대한 복지국가 모델은 꽤나 이상적이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마다 6개월 이후부터는 즉시 어린이집에 자리가 마련되고, 의료비는 무상 지원인데다 노인들을 자택에서 돌봐주는 복지제도 또한 보편화돼 있다. 청년에게는 5년간 연구보조금이 부족하지 않게 지급되고, 여기에 더해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1년의 안식년이 제공되어 세계 다른 나라로 탐방을 떠날 수도 있다. 그뿐인가. 대학입학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재수강도 가능한 나라가 바로 덴마크이다. 그런데 경제위기가 닥친 이후, 덴마크 노동자에게는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덴마크 안에서나 유럽의 다른 국가에서나 그토록 칭찬이 자자하던 기적의 실업 대책 ‘유연적 안정성’(flexicurity) 정책이 과연 1930년대 경제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 상황에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론상으로 보면 이 생경한 신조어는 놀라운 공식을 담고 있다. 즉, 고용주에게는 노동의 유연성을, 노동자에게는 직업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면서 최상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덴마크의 기업주는 미국이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실업수당이나 대량실업에 신경쓰지 않은 채 즉각 고용자들을 해고할 수 있다. 대신 고용자들은 최소 4년간 정당한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으며, 필요한 경우 개별적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 교육을 받거나 코펜하겐 시드하브넨 고용청 같은 데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신이 다니는 피트니스클럽에서 체력 단련을 할 수도 있다. ‘유연적 안정성’ 제도의 허와 실 지난해만 해도 이 제도는 별다른 의심 없이 시행되었다. 실업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중도좌파 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이 제도를 만들어낸 모겐스 리케토프(현 사민당 국회의원)의 태도는 단호했다. “성공을 거둔 제도이다. 기업들은 고용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초과 인력이 있다면 비용을 들이지 않고 이 문제를 즉각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1994년에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되었을 때, 덴마크에는 공식적으로 30만 명의 실업자가 있었다(경제활동 인구의 10%에 해당). 그로부터 7년이 흐른 뒤, 실업자 수는 10만 명 미만으로 떨어졌고, 경제위기 한파가 발트해 연안에 닿기 전인 2008년 6월에 이 수치는 4만7천 명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은 덴마크계가 아니더라도 ‘유연적 안정성’ 정책을 압도적으로 찬성했고, 세계 기업인 순위에서는 덴마크가 상위를 독차지했다. 로잔의 한 경영대학원은 2009 세계 경쟁력 연감을 작성하기 위해 올해 57개국 4천 명의 의사결정권자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 결과 덴마크는 1위 자리에 올랐으며, 정부의 자유주의 성향과 호의적 기업환경, 평화로운 노사관계 등을 이유로 100점(프랑스는 28.4점)을 받으며 기업인들의 천국으로 뽑혔다. 미국의 <포브스>는 덴마크를 ‘전세계에서 가장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꼽았고,(1) 질문에 응한 기업인들의 견해에 따르면 덴마크는 미국보다 기업 환경이 잘 돼 있는 나라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불만을 품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6년 유럽 생활환경 및 근로조건 개선 재단(2)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덴마크 노동자들은 27개 유럽연합 회원국 가운데 자신들의 직장 생활에 가장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만족도가 이해되기도 한다. 완전고용이 거의 보장돼 있고, 급여 인상도 빠른데다(경제위기 직전인 2007~2008년 임금인상률 4%), 현재 직장의 사장과 사이가 안 좋거나 바이킹의 후예답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모험심이 발동할 경우 경쟁사에 가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최근 유럽 선거에서 약진을 보인 사회민주주의 세력보다 더 좌파 성향인 덴마크 사회민주당 총재 홀커 닐센은 “유연적 안정성 제도는 경제 부흥기에 발전한 제도이며, 이 제도의 성공도 부분적으로 이런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윽고 경제위기가 도래하자 ‘유연적 안정성’ 제도는 외발로 걷기 시작한다. 유연성은 강화되고 안정성은 축소된 것이다. 영토는 프랑스의 미디피레네주보다 작고 인구는 560만 명으로 론알프스 지역보다 적은 덴마크는 바다와 인접한 지형으로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다. 덴마크 최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컨테이너 운송업체 AP 몰러-머스크의 완곡 어법에 따르면, 이 때문에 작금의 ‘이례적 세계경기 침체’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유연성 강화 vs 안정성 축소
비단 항공사뿐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바짝 움츠러든 상태고, 비용 초과분이 있는지 눈을 씻고 찾아보고 있으며, 정원 삭감까지 감행하고 있다(한 예로 선박 500척을 가진 머스크사의 승무원들은 1월 1일부로 화장지조차 쓰지 못하게 됐다). 덴마크의 실업률은 지난여름 이후 프랑스보다 2배나 빨리 증가하고 있다. 즉, 실업률은 1년 만에 2배나 늘어, 2009년 7월 현재 7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가장 심한 타격을 입은 건 노동자들이다. 덴마크 3대 노조 가운데 하나인 ‘덴마크 노동자 총연맹’에 따르면, 피해가 심한 건설 및 공공사업 분야에서는 노동자의 13%(1년 전보다 2배 증가된 수치)가 일자리를 잃은 상태다. 이 노조의 가입원도 2008년 1월 이후 4%가 줄어들었다. 접수계원 1명을 뽑는 데에도 지방에서 900명 이상이 몰려들었고, 고용정책을 담당하는 국립고용청 집계에 따르면 24살 미만 실업자 수는 8개월 만에 4배가 늘었다. 그래도 이들은 실업수당을 받는 사람들이다. 노조와 연계된 30여 개 실업기금에 분담금을 냈기 때문이다.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덴마크 또한 자발적 성향의 유서 깊은 ‘겐트’ 모델(3)을 적용하고 있다. 실업보험을 임의로 선택해 가입하는 것이다. 그 결과, 다수의 젊은이들은 2000년대 경제 호황기에 거의 완전고용이 이뤄지자 보험 가입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2009년 1/4분기 말, 이들 가운데 1만6천 명은 일자리도 없고 실업보험 가입도 안 된 상태였고,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실업자는 보험에 가입된 실업자보다 3배나 많았다. 이들은 프랑스 최저활동비와 엇비슷한 수준의 보잘것없는 공공 지원금에 만족해야 한다. 취업난 가중에 임금 동결까지 지난 3월에 시작된 임금 협상에서도 좋은 소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회사 쪽 정보에 따르면 민간 분야에서 노동자 2명 가운데 1명은 2009년 임금 인상이 없을 예정이고, 3명 가운데 1명은 시간급 동결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2% 수준의 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게 공식기관이자 독립기관인 경제위원회의 설명이다. 더 나은 집을 얻기 위해 돈을 빌린 신혼부부 대다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덴마크에서는 3분의 2 가까이가 자기 집을 갖고 있다). 15년 가까이 이어져오던 압류 건수 기록도 경신됐다. 덴마크 최대 은행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 제2위 은행인 단스크뱅크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내림세인 부동산 시세는 2009년에도 “일반 주택의 경우 10% 가까이 하락할 것으로 보이며, 공동 주택의 경우에는 2배가 떨어질 것”(4)이라고 한다. 하락폭은 영국과 아일랜드에 이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부 권력 3순위의 젊은 예산부 장관 크리스티안 옌센의 태도는 완고하다. 예산부에서는 시련을 겪고 있는 주택 보유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는 얘기만 들려오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책임져주는 것에 오랫동안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덴마크식 복지국가 모델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징후가 하나 더 있다. 2001년 이후 정권을 잡은 중도우파 정부가 재정 압박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위기 이전에 나온 정부 계산에 따르면, 2015년 정부 재정은 150억 크로네가량 적자일 것이다. 현 정부의 비현실적인 2비(非) 정책(세금 비인상, 세금부담액 비감소)에 근거한 ‘2015 경제 계획’은 경기 침체를 견뎌내지 못했다. 2010년 1월 1일부터 적용되는 세제 개혁은 간접세를 줄이되 이에 대한 재정을 충당해줄 ‘그린세’의 인상을 특정 날짜로 못박아서 미뤄두었다. ‘그린세’란 전기, 난방, 화물차, CO² 이외의 온실가스, 폐수, 택시 등에 부과되는 환경세이다. 이미 25%의 부가가치세를 내면서 고작 성인 1명당 연간 100유로, 아이 1명당 연간 40유로에 준하는 ‘소소한’ 수표를 받고 있을 뿐인 가계에 세 부담이 늘어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괴상하기 짝이 없는 세제 개혁은 복지국가의 위상을 다소 약하게 만들지만 우파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2010년에는 150억 크로나(약 20억 유로 이상), 2011년에는 80억 크로나(약 11억 유로)를 경제에 불어넣음으로써, 무너졌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란 경기를 부양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러고 나면 볼 만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늦어도 2011년 11월에는 차기 총선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보수 성향의 장관들로 구성된 뢰케 라스무센 정부는 의회에서 소수당에 속한다. 25표가 모자라는데, 우파인 덴마크 국민당(DF)이 종종 손을 빌려준다. 국민당은 스스럼없이 외국인 혐오주의를 표방하며, 유럽연합에 대해서는 적대감을 드러내고, 퇴직 생활자를 옹호하고 있다. 28살의 모르텐 메세르슈미트는 6월 7일 유럽 선거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인물이고, 유럽 선거 운동 기간에는 코펜하겐 거리의 모든 가로등마다 그의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그는 이민이 덴마크 사회 모델에 크나큰 위협이 된다고 비난했다. 그는 보수 일간지 <베를링스케 티덴데>에서 “덴마크는 작은 나라이고, 우리 국민은 특별한 정체성을 갖고 있으므로, 우리의 사회 모델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260년 역사의 이 신문은 성황리에 이루어진 선거 만찬 행사에 그를 초대하기도 했다(정당별 선거 결과는 상자기사 참조). 우파 국민당, 이민자 외면 덴마크 국민당이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장관이 필요한 건 아니다. 덴마크는 의회제를 유지하고 있고, 입법권은 행정권에 앞선다. 모든 건 의회 및 의사결정 기구인 25개 의회 소속 위원회에서 이뤄지고, 장관들은 의회의 결정 사항들을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하는 처지다. 2004년 발트 3국의 유럽연합 가입을 주도했던 사람 중 하나인 구나르 리베르홀트 전임 주프랑스 덴마크 대사는 “브뤼셀과 각료회의에서, 덴마크 장관은 의회의 지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며, 이를 바꾸려면 의회의 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의회에서의 유리한 지위를 등에 업은 국민당은 이민자들과 이슬람계 덴마크인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과 도발을 서슴지 않는다. 2009년 1월 1일 집계된 이민자 수는 40만1771명이며, 뿐만 아니라 덴마크에는 터키에서 파키스탄, 소말리아에 이르기까지 여러 무슬림 국가 출신의 덴마크인이 있고, 이들은 1960년대에 정치 망명자로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다. 언젠가는 학생식당의 닭고기를 유명한 ‘덴마크’ 돼지고기로 시급히 바꿔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온갖 수단을 써서 이민자들의 사회보장 접근을 차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파 국민당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2002년 이후 이민자의 배우자가 결혼 후 2년 안에 최소한 300시간을 일하지 않으면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한다. 남편의 보호하에 있는 무슬림 여성들을 해방시켜주겠다는 게 그 이유다. 그녀들을 한층 더 해방시켜주고자 정부는 450시간을 요구하려 한다. 덴마크 국적 취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국적 신청 자격을 얻으려면 9~10년 정도 거주 기간이 필요하고, 특히 까다로운 덴마크어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2002년 이후 국민당의 영향으로 의회는 네 차례 덴마크어 시험을 강화했다. 일간지 <베를링스케 티덴데>가 시행한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대학입학 자격자 2명 가운데 1명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구성 정책 또한 강화됐다. 혼인 관계를 인정받으려면 남편과 아내 모두 최소 24살 이상이 되어야 하며, “배우자의 출신국보다 덴마크와 더 많은 관계를 갖고 있어야” 한다. 덴마크 정부는 사회적 견고함을 구실로, 일련의 조처들을 차례로 내놓으며 고대 로마시대의 외국인 지위를 다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1992년 싱가포르에서 온 라비 찬드란은 소수민족 에이즈 희생자 지원 비정부기구(NGO)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금발 머리에 파란 눈이 아닌 ‘신 덴마크인’(new danes)의 비애를 이야기한다. “그들은 이곳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자라났고, 덴마크가 유일한 조국인 사람들이다. 이들은 덴마크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부모의 신세 한탄을 듣고 자라며, TV에서는 토종 덴마크인 한 사람의 폭행 치사 사건은 애도해도, 비토종 덴마크인의 사망 사건은 슬퍼하지 않는다. 이들은 투명 유리벽에 부딪힌 느낌을 받고 있다. 이들이 이따금씩 2008년 2월의 노레브로 사태(5)처럼 폭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영채널 <TV2>의 유명한 국제정치 전문 기자 랄리 호프만은 이같은 배타적 분위기에 애석함을 토로한다. “어린 시절 내가 알던 덴마크라는 나라는 사라진 것 같다. 전세계에 덴마크의 이미지가 상당히 실추되었다.” 정부 내 극우세력 감지 남 얘기 좋아하는 유럽 사람들의 눈에 덴마크 정부 내 극우 세력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잘 보여준 일대 사건 하나가 있었다. 선지자 무함마드의 캐리커처가 2005년 9월 말 덴마크 일간지 <윌란스 포스텐>에 실린 것이다. “문제는 이 캐리커처가 신문에 실렸다는 게 아니라, 당시 총리였던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이 덴마크 주재 12개 이슬람 국가 대사들의 접견 요청을 4개월 동안 거부했다는 데 있다.” 외국인을 맞아들이고 소수민족을 대우하는 데 덴마크 전통의 자유로운 노선을 가까스로 수호하고 있는 유일한 일간지 <폴리티켄> 퇴게르 세이덴파덴 편집장의 설명이다. “그러고 난 뒤에야 이같은 위기 사태가 세계에 알려지고 모든 통제선을 벗어났다.” 라스무센 전 장관의 행동은 어설픈 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의 거부 의사는 확고했다. 표현의 자유 수호는 하나의 핑계에 불과했고, 코펜하겐 정계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을 제대로 숨겨주지 못했다. 전직 가사 전담 복지사로 국민당 실세 지도부인 피아 크저스가르트는 모든 접견 요청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여론이 우파 쪽으로 기울자 좌파도 편치 못한 상황이 됐다. 사회민주당, 사회주의 좌파, 사회자유당 세력은 정부 3자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8년간 선거에서의 실패로 쓴맛을 본 뒤로 이들은 여당의 외국인 배척 정책에 단호한 반대 태도를 표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07년 11월 선거에서 진 뒤 사회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난 모겐스 리케토프트는 “외국인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를 나무라며 저들은 계속해서 집권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다. 덴마크인들은 사회적 측면에서 좌파가 언제나 우파보다 나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은 사람들이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로 부를 쌓았던 1960년처럼 덴마크의 사회적 모델을 확대시키려는 사회적 합의가 지금도 가능할까?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의 공식 역사가였던 크누드 예스페렌은 덴마크 역사에 관한 자신의 저서에서 “유럽의 변방으로 버림받았던 반도는 오늘날 하나의 낙원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6) 지나간 평등의 시대는 이제 더는 ‘남을 위해’ 돈을 내지 않겠다며 소란스레 세금 인하를 요구하는 중산층의 이기주의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세금 개혁으로 중산층은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었으나,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5월 말 (어린이집, 학교, 노인 간호, 고용, 문화 등) 수많은 일들을 집행하며 복지국가의 충실한 부하 역할을 하는 96개 도시 시장들은 가장 빈곤한 도시들을 위해 가장 부유한 도시들이 세금 보전을 해주는 문제를 두고 서로 분열상을 드러냈다. 이들 가운데 40개 도시는 연대 세금의 인하를 요구했고, 여기에 분개한 26개 가난한 도시 시장들은 이 안의 철회를 요구했다. 1인당 소득이 코펜하겐의 2배에 달하는 루더스달은 더 이상 돈을 내고 싶어하지 않았다. 미국식 신보수 싱크탱크라고 할 수 있는 ‘세포스 엣 코펜하겐’(Cepos et Copenhagen)재단은 여유로운 삶을 보장할 방법으로 세금 인하를 만사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다. 기업들 또한 세금 특수를 놓치지 않았다. 법인세는 25%(프랑스는 33.5%)로 떨어졌고, 자본과 재산에는 그 어떤 세금도 부과되지 않는다. 덴마크의 높은 생활비를 설명해줄 만큼 유독 높은 수준의 간접세를 부담하며 사회 지출 대부분을 재정 지원하고 있는 건 일반 가계들이다. 복지국가의 위상 흔들 좌파도 우파도 이들에게 더 이상의 추가 노력을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므로, 머지않아 복지국가의 위상은 불가피하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는 실업수당 지급 기간을 4년에서 2년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이미 2006년에 매월 2000유로로 상한선이 정해진 상황이다. 당장은 경제위기 때문에 포기하더라도 이는 그저 유보된 것에 불과하다. 기업인들로 구성된 덴마크기업연합의 라스무센은 “문제를 몇 년 미뤄둘 수는 있어도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는 점을 인정한다. 올보르대 요르겐 굴 안데르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사회보장제도는 이제 구조적 실업 감소라는 또 다른 목표 때문에 뒤로 밀리고 있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채워야 할 조건들은 강화되었고, 의무 사항들은 늘어났다(주당 최소 4명의 고용주와 인터뷰를 해야 하고, 직업훈련을 받아야 하며, 취업설계사와 면담을 해야 하고, 주거지와 직종을 바꾸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실업 대책은 더욱 강경 노선으로 흘러가려고 한다. 국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부과되는 ‘활성화’ 조처는 놀고 먹는 일이 아니다. 안데르센 교수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실업자는 활성화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일자리를 구한다”고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 정책을 통해 이루려던 초기의 취지는 사람들이 업무 중단이나 실업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노동 능력을 재향상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더라도, 실질적으로 이 정책은 실업자들이 까다롭게 굴지 않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재취업하도록 하려는 술수인 것으로 판명됐다. 따라서 무직으로 3개월을 보낸 뒤 활성화 기간에 들어가는 걸 막으려는 만반의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새로운 직업, 새로운 고용주, 새로운 일터를 선택할 여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거부할 경우에는 수당 또한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앞으로의 덴마크 사회 모델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지원도 없다는) ‘생산적 복지’(workfare)가 ‘복지’(welfare)를 대체하게 될 것인가? 글·장피에르 세레니 Jean-Pierre Sereni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각주> (1) <포브스>, 뉴욕, 2009년 3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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