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동자를 위하여

이상엽 작가 ㅡ21대 대선에서 노동은?

2025년 대선은 노동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은 채 끝나고 있다. 아니, 입에 올리기는 했으나 조롱과 회피의 방식으로만 언급되었다. 거대 양당은 양대 노총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지 않았고, 거대한 플랫폼을 떠도는 수백만의 라이더와 크리에이터, 콘텐츠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정책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라 불리기를 거부하는 노동자들이며, 그 거부는 자의가 아닌 강제였다. 우리는 노동을 실패라 부르고, 노동자를 불만을 가진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며, 노동조합을 공공의 적으로 묘사해왔다. 그리고 이번 선거는 그 의식을 정교하게 반영했다. (오직 기호 5번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만 노동을 부르짖고 있다.) 설난영은 과거 현장 노동자였지만, 지금은 “제가 노조하게 생겼습니까?”라고 말한다. 예쁘고 문학적이며 부드럽다는 이유로 자신은 노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마치 노동은 추하고 투박하고 거친 사람들의 것이며, 세련되고 성공한 이의 삶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노동을 외모와 태도로 판단하는 사고는 놀랍게도 노동 내부에서 나왔다. 반면 유시민은 그런 설난영을 ‘노동자 주제에 김문수를 만나서 제정신이 아니다’라며 비웃었다. 진보를 자처한 지식인은 학력과 출신으로 사람을 규정했고, 스스로 계급 위에 있는 듯 그녀를 내려다봤다. 설난영은 노동을 혐오했고, 유시민은 노동자를 무시했다. 둘 다 다른 방식으로 노동을 거부한 셈이었다. 이런 구시대적 장면 속에서 젊은 세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노동이 아닌 ‘기회’ 속에 산다. 이들은 꽤 많은 수가 이준석을 지지한다. 쿠팡, 배민, 유튜브, NFT, 코인, 파킹 앱, 명품 중고 거래. 이 세계에서 일은 게임이고, 노동은 족쇄다. 그들은 노조에 가입하는 대신, 리뷰를 올리고 별점을 매기며 노동을 소비한다.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면 지는 게임이라는 걸 안다. 누구도 대선에서 노동을 말하지 않은 이유는, 말해봐야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이 나라에서 노동은 권리가 아니라 부끄러움이 되었고, 계급은 개선 대상이 아니라 숨겨야 할 취약성이 되었다. 정치는 그것을 읽었고, 후보들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을 지웠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선이 보여준 노동의 자리다. 노동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지워졌다. 모든 이들이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는 단어. 그것이 바로 ‘노동’이다.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지식 노동자이기에 노동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