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9일 금요일 날씨 화창하고 바람이 따뜻해서 오후에는 더웠다.
교육청에 주차를 시키고 지하철로 움직이려고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작아서 뒷자리에 앉아보니 비좁기는 하지만 짧은 거리는 탈만 할 것 같았다. 앞자리는 지현이 앉았다. 올 때는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기태가 앉았다. 아이들은 시종일관 얼마나 들떴는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얼마나 시끄럽던지. 더구나 승현이는 머리를 단장하다가 고대기에 손을 덴 모양이다. 아프다고 해서 어쩌다가 그랬냐니까 말을 해준다. 일기에도 썼는데 머리 모양새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근원이는 경주에 간다고 5시까지는 보내달라는 엄마의 부탁 때문에 서두르게 했다. 영은이는 늘 조용하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철민이는 정말 쉬지 않고 활동적이고 말도 많아서 살로 갈 겨를도 없어 보였다. 같이 다니니까 아이들의 특징이 확연하게 보였다.
한 시 반까지 교실로 오라고 했더니 가장 먼저 온 사람이 기태였다. 승현, 철민, 영은, 지현, 근원 순으로 교실에 뛰어들어왔다. 준비물로 마실 물, 필기도구, 수첩, 휴지 정도를 작은 가방에 담아오라고 했더니 멋을 낸 지현이만 가방에 챙겨왔다. 이모가 사줬다는 검은색 숄더백은 어른스러웠다. 잃어버릴까봐 손전화까지 챙겨오고,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길까봐 동전을 주었다며 제각각 가져온 이야기를 했다. 간식을 챙겨온 기태 덕에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요기를 했다. 카스테라였는데 그것으로 부족해 보였다. 아이스크림이 많아서 4개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그래도 성이 안찬 표정이어서 시간도 그래서 샌드위치를 다시 시켜서 먹였더니 그제야 배가 부르단다. 철민이가 가장 빨리 먹었다. 지현이가 가장 늦게 먹었다. 카페 아줌마가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시종일관 아이들을 쳐다보고 웃었다. 나중까지 인사를 한 사람은 기태였다. 아이들에게 내 돈을 내고 먹었지만 음식을 해준 분께 고맙다고 인사해야 한다고 하니까 시큰둥이다. 그러면서 돈을 낸 사람이 더 고마운 것 아니예요? 이런다. 아이들이 얼마나 어른스러운지 내가 책을 선물했고, 아이스크림을 시켰더니 하는 말이 "선생님이 오늘 돈을 너무 많이 썼어" 이러면서 아이스크림 양이 많아서 적게 시켰는데 마치 돈을 줄이려고 적게 시킨 것처럼 눈치껏 먹어라 하는 소리로 들려서 내가 큰소리로 웃었다. 아이들은 책구경 보다는 먹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소감을 물었다.
기태- 친구들과 다시 또 오고 싶다.
철민- 샌드위치 먹은 것이 좋았고 재미있었다.
근원- 재미있어서 다음에 또 오고 싶다.
지현- 책을 사주셔서 좋았고 친구들이랑 다시 오면 좋겠다.
승현- 친구들과 와서 책을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은- 책선물 받은 것이 좋았다.
도착 시간은 2시가 조금 넘었다. 길들이 공사중인 곳이 많아서 골목으로 요리조리 갔는데도 그랬다. 아이들을 태우니 참 조심스러웠다. 책방 사장님이 환히 웃으면 맞이해주셨다. 그리고 책 한 권을 읽어줬는데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좋아했던 '왜요' 였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내가 읽어준 책이다. 그림자극이라도 보여줄 수 있을까 했는데 당일에 갑작스레 전화한 것이라서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미리 준비를 해두는건데 싶기도 했다. 다음에 갈 때에는 이런 점도 미리 점검을 해야겠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그림자극도 보여줘서 당연히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어서 이벤트 하나가 줄었다.
아이들이랑 신간 위주로 그림책을 보았다. 아이들은 책이 어마어마하게 있으니까 고르지를 못했다. 그리고 자기들 키를 능가하는 책꽂이와 빼곡한 책 속에서 고작 고르는 것이 넓게 펼쳐놓은 판매대에서 주로 골랐다. 나 역시 신간이 그 쪽에 있다고 해서 살펴봤지만 역시 펼쳐놓은 곳에 있는 책 중에서 고른 것은 1권 뿐이었다. 좋은 책들은 모두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것이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들도 그림책을 이것 저것 가져다 읽는 듯 했다. 두어권 읽고 싫증이 난 표정이어서 그 때 말해주었다. 한 권씩 고르면 선물로 줄꺼라고. 그런데 철민이가 '누가 내머리에 똥 쌌어?' 팝업북을 골라서 내게 보여주며 재미있어하더니 끝내 그 책을 골랐다고 하자 남자 셋이 모두 그 책을 골랐다. 이미 읽어준 책은 안된다고 했더니 왜요? 그래서 내가 안 읽어준 책에서 골라야 책읽어주기를 너희들이 할 수 있지 했더니 처음에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중에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시 제안하자 지현이만 선뜻하겠다고 하고 나머지는 엥? 이런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철민이 부터 안하겠단다.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별을 모으려고 애쓰지 않겠단다. 시시했다는거다. 자기들이 얼마나 기대를 하고 왔는지 말하면서 차라리 밖에서 뛰어노는 것이 더 좋았단다. 그 말에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상했다. 그러자 지현과 승현이가 " 너 책방에 오는 줄 몰랐어? 우린 엄마가 말해줬는데?" 이러면서 "그러면 너네 별 우리 줘라 " 이러면서 여자 셋이 모두 손을 내밀었다. 끝까지 꾸준히 책을 보는 아이들은 여자 셋이다. 기태도 좀 오래 보기는 했지만 모두 지겨워 죽겠어 하는 표정이 한 시간이 지나가자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애들에게 골라줄 그림책을 찾아서 30여권 읽었는가 보다. 10권을 골랐는데 그 중에서 자기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라고 했더니 제각각 골랐다. 아이들이 골라온 책 중에서 권하고 싶었던 책이 적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가 고른 책을 갖고 싶었을텐데 싶은 마음에 잠깐 갈등을 했다. 아이들이 아이스크림과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책 표지 안 쪽에다 애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나 용기를 주고 싶은 말을 써줬다. 아이들이 이 책을 얼마나 기억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권 읽어주고 올껄 하는 생각도 또 들었다. 시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아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내가 읽어줘야겠다. 아이들이 고른 책 중에서.
근원이 엄마가 마중을 나와 기다리셨고 5시를 몇 분 넘기면서 아이들 집 근처에서 내려주었다. 아이들은 환호를 하면서 월요일에 만나자면서 영어식 인사를 했다. "See you!" 일상 언어 속에 영어가 자연스레 들어오고 있다. 교육과정의 힘이라는 것과 사교육의 만남이 아이들 정신까지 좀먹지 않을까 걱정이다. 아이들에게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했지만 그것은 내 혼자 생각이라는 것도 알겠다. 기태 엄마가 문자를 보내주셨다. 답문을 보내면서 아이들이 재미없어 했다는 것을 말하니 아니라는 답문자를 다시 보내셨다. 그것은 내가 더 잘 알지 싶었다.